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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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최근 ‘서해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 피살 사건’을 놓고 벌이는 진실공방의 핵심은 ‘이씨가 자진 월북했는가’ 여부다. 2020년 9월 서해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실종된 이씨의 월북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월북 조작’”이라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은 “군 당국이 파악한 첩보 내용에 월북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반박했다.
여야는 이번 사건이 1년9개월 만에 다시 쟁점이 된 배경을 두고도 다퉜다. 국민의힘은 남북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던 문재인 정부의 ‘북로남불’로,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신색깔론’으로 각각 규정했다. 여야는 군의 ‘SI(Special Intelligence·특별취급첩보)’ 공개를 두고도 격론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건 양태가 201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북방한계선) 대화록’ 공개 논쟁 때와 판박이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월북 공방’의 진실은
여야는 이씨가 스스로 월북했는가를 두고 서로 다른 근거를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20일 CBS 라디오에서 “피해자가 구명조끼를 착용했고, 북한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소상히 알고 있었던 점” “피해자가 북한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있고, 해류 분석 결과 인위적인 노력 없이는 그곳까지 도저히 갈 수가 없다”는 판단 근거 등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국회 국방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였던 한기호 의원도 당시 정부 보고를 받고 월북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고 설명했다. 전반기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당시 국방위 국민의힘 간사 의원 역시사건 직후 비공개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국방부의 판단 근거를 상세히 듣고‘월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정황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백브리핑한 바 있다”고 밝혔다. 국회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였던 김병기 의원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당시 우리가 격분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북한군의 만행이었지 월북 문제는 심각한 쟁점이 아니었다. 군과 해경, 정보당국의 판단이 일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씨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 북한에 거짓말로 월북 의사를 밝혔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인 하태경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당시 실제 감청 정보에 월북이라는 표현이 있더라도, 참고사항이지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며 “북한 당국 발표에 (이씨가) 도주하려는 조짐이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북한군이) 총 들고 물어보니 본인은 살기 위해서 그랬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여기에 더해 ‘문재인 정부의 4대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이씨에 대한 도박 빚 부풀리기 의혹, 정신적 공황상태 조작 의혹, 조류 조작 의혹, 방수복 은폐 의혹 등이다. 하 의원은 “일기예보가 100% 정확하지 않듯 조류도 바뀔 수 있다”며 이씨가 조류에 떠밀려 북한으로 표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어업지도원이던 고인이 방수복 없이 구명조끼만 입은 데 대해 “방수복을 입지 않으면 (저체온증으로) 죽는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 월북 기도를 했다면 왜 방수복을 방에 두고 갔나”라고 반문했다.
해경은 ‘자진 월북’에서 ‘월북 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로 1년9개월 만에 결론을 번복하고도 그 판단 근거는 밝히지 않고 있다. 대통령기록물 등 각종 정보가 비공개된 터라 진실은 명확히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정치권의 진실 공방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일 커지는 모습이다.
■‘북로남불’ VS ‘신색깔론’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북한 눈치 보기 의혹을 제기했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 9월 초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으로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은 직후 피살 사건이 벌어지자 진상 규명에 소홀했다는 주장이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NS에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과 남북관계 개선의 희생양으로 우리 국민을 월북 사건으로 몰아간 것은 아닌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전날 SNS에 “내로남불을 넘어 북로남불”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를 흠집 내기 위한 신북풍 사건이라고 맞섰다. 전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해경과 국방부는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한 채 같은 팩트를 두고 해석만 뒤집었다”며 “윤석열 정부의 무분별한 전 정권 조이기”라고 비판했다. 민홍철 당시 국방위원장은 이날 YTN 라디오에서 “사실관계나 조사 자료가 새롭게 수집된 건 아닐 건데 이렇게 판단을 바꾼 데 대해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북한에 굴복했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신색깔론”이라고 했다.
여야 논쟁은 관련 자료 공개 여부로 확전됐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SNS에 “민주당이 떳떳하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대통령기록물 공개를 촉구했다. 전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안보 해악을 감수하고라도 당시 비공개 (국방위) 회의록 공개를 간절히 원한다면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4성 장군 출신 김병주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판단 아래 미국 측의 협조를 받아 당시 SI(특별취급첩보) 정보를 공개하면 된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SNS에 “언론에 따르면 사건 직후 해경이 월북이라는 발표에 난색을 표하자, 담당자를 교체했다고 한다. 이런 비상식의 이면을 밝히자는 것”이라며 “설마 민주당은 이것마저 첩보라 우기며 공개를 거부할 셈인가”라고 재반박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건이 2012년 NLL 대화록 유출 사건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2년 대선 직전 정문헌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에게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대선 이후 공개된 대화록에서 이는 사실무근으로 판명났으나 대화록 해석을 두고도 여야는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번 사건이 여야 모두 ‘네 탓’ 정쟁에 매몰하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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