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실, 정보공개 소송 항소 취하
신구 권력 갈등 재점화 가능성
국가안보실·해양경찰청·국방부 등이 일제히 문재인 정부의 ‘자진 월북’ 판단 뒤집기에 나서면서 신구 권력 갈등이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두 정부의 서로 다른 판단 근거를 두고 진영 충돌이 격화하며 ‘진실게임’ 공방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국가안보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2020년 9월22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후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1등 항해사 이모씨의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 대한 항소를 오늘 취하한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이씨 유족이 문재인 정부의 ‘자진 월북’ 판단을 납득할 수 없다며 청와대와 해양경찰청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정부가 항소해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국가안보실의 항소 취하는 범정부 차원 ‘시정조치’의 일환이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해당 사건 처리가 ‘부당했다’고 결론짓고, 이날 국가안보실·해양경찰청·국방부 등 유관기관이 일제히 입장을 밝히며 전 정부 판단 뒤집기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는 이씨가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자진 월북한 것으로 봤는데, 재검토 결과 “자진 월북의 의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 윤석열 정부 판단의 골자다. 국가안보실은 “(항소 취하로) 유족에게 사망 경위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정보를 제한했던 과거의 부당한 조치를 시정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인천해양경찰서는 이날 브리핑에서 “국방부 발표 등에 근거해서 피격 공무원의 월북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현장조사와 국제사법공조 등 종합적인 수사를 진행했으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정보공개소송 항소를 취하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도 보도자료를 내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해 국민들께 혼선을 드렸다”면서 “해경의 수사 종결과 연계하여 관련 내용을 다시 한번 분석한 결과,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의 항소 취하에 따라 군사기밀을 제외하고 유가족에게 정보를 공개하도록 한 1심 판결은 확정될 예정이다. 다만 공개 범위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안보실에서 관리하던 해당 정보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이관돼 공개가 어렵다. 윤석열 정부도 해당 기록물의 목록이나 내용은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대통령기록물법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의결이 있거나,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이 있는 경우 등에만 제한적으로 열람이 이뤄지도록 한다.
이날 조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청와대가 유족이 낸 소송에 항소하자 “집권세력은 서해공무원의 죽음을 은폐하려 (한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싶으냐. 정부의 무능, 아니면 북한의 잔혹함이냐”고 했다.
신구 권력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대선 후보 당시부터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와 강하게 각을 세우던 이슈라 정치적 휘발성이 크다. 정보공개가 제한적이라 명확한 자료로 결론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아 진영 간 ‘진실게임’과 정쟁이 반복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대통령실은 항소 취하 결정을 밝히면서 전임 정부 조치가 부당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뚜렷한 근거 없이 자진 월북 프레임 때문에 한 사람의 잘못으로 규정됐다면, 어떤 의도가 있다면 밝혀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유가족들의 여러 차례 진상 규명에 대한 요구에 국가가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판단”이라며 “신구 갈등이 아니라 진상 규명에 정부가 응답했다고 보시는 것이 맞다”고 했다.
유정인·심진용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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