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불가능토큰(NFT) 이미지. [셔터스톡]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최근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암호화폐 사업을 추진하던 A카드회사는 금융당국으로부터 “NFT 등의 개념이 명확지 않으니 관련 마케팅을 자제하는 게 어떠냐”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겉으로는 ‘자율’이라고 했지만 속내는 하지 말라는 뜻 아니겠나”며 “해당 카드회사는 그 프로젝트를 잠정 중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초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심사지침’ 제정안을 만들었다. 네이버·카카오·쿠팡 등 플랫폼 사업자가 자사 상품을 검색 상단에 올리거나 입점 업체의 다른 플랫폼 이용을 방해할 경우 제재 대상으로 삼는 내용 등이 담겼다. 공정위는 심사지침에 대해 “규제를 신설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제한 행위의 심사기준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발생하지 않아도 됐던 비용을 더 지출하게 하거나, 신규 사업에 제동을 거는 결과를 낳는 심사지침이라면 산업 발전을 막는 ‘그림자 규제’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기업은 이처럼 다양하게 ‘그림자 규제’에 맞닥뜨린다. 규제당국이 법령에 명시되지 않았어도 행정지도나 심사지침, 구두지시 등으로 기업에 건건이 간섭하는 것을 말한다. 명백한 근거 없이 행정편의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도 있어 ‘옆구리를 찌르는 변칙 규제’라고도 불린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3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법령과 관계없는 행정지도 같은 그림자 규제는 확실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림자 규제는 ‘길다란 그림자’처럼 곳곳에서 나타난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상법 같은 경우 기업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많은데 규제 영향평가, 심사를 받지 않아 일종의 그림자 규제가 돼버린 상황”이라며 “행정지도를 안 지켰다고 담합한 거라며 처벌하거나 이유 없이 인허가를 지연시킨 경우도 그림자 규제로 꼽기도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제공하는 왓챠는 지난해 방탄소년단(BTS)이 나오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를 생중계한 뒤 방송을 놓친 시청자들을 위해 즉각 VOD(주문형 비디오) 서비스를 하려고 했으나 뜻밖의 장벽에 가로막혔다. OTT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분류 절차를 거친 영상물만 서비스할 수 있는데 심사 기간 지연이 반복돼서다.
결국 왓챠는 해당 방송이 된 지 거의 일주일이 지나서야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요즘처럼 콘텐트 수가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 맞지 않는 규제일뿐더러 그 규제에 따른 심사가 지연되는 상황 또한 산업 발전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종 OTT 서비스인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로고. [중앙포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명확한 법령이 없는 상태에서 자의적 기준으로 규제하다 보니 규제당국이 협회 등의 이익단체에 두루뭉술하게 떠넘겨 규제하도록 만드는 경우도 있다.
가령 NFT 관련 마케팅을 자제하라는 사안과 관련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여신금융협회 차원에서 가상자산이나 NFT와 관련된 건 소비자 보호 이슈가 있으니 자체적으로 (권고)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협회 내부에 카드 회사들이 마케팅 광고를 하기 전 심의 접수해야 하는 자율규제부에서 판단한 걸로 안다”고 답했다.
웹툰 산업 제작사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그간 웹툰의 경우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으나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웹툰을 취급하는 일부 출판사에게도 ISBN을 등록하라고 안내했다고 한다. 한국웹툰산업협회 관계자는 “웹툰은 기본적으로 연재형 콘텐트라는 포맷인데 ISBN을 적용하라는 건 도서정가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이러면 다양한 플랫폼에서 이벤트나 코인제 방식으로 유통되는 통로가 막힌다”고 말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출판유통심의위원회로부터 웹툰 제작사에 안내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이행한 것뿐이다. 우리는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이 없다”며 “ISBN 국제기구에서 웹툰에는 적용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아 올 하반기부터는 ISBN 발급을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경제조정실 직원으로부터 권투 장갑을 선물 받은 뒤 '규제 혁파'를 외치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가이드라인, 심사지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더 많은 그림자규제가 양산되고 있다”며 “특히 최근 온라인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 그림자규제 시도는 유사 법안들이 국회에서 심의 절차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 기반한 절차를 우회하면서 사실상 해당 부처가 규제를 독점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꼬집었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담당 공무원이 규제를 만들어 자신의 권한을 늘리려 하거나 규제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위험부담을 회피하려 하기 때문에 그림자 규제가 생긴다”며 “공무원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규제개혁을 위한 많은 기구가 생겨도 소용없는 만큼 공무원들의 승진체계·목표 등을 규제 완화 친화적인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백일현·안효성·윤상언·정진호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