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는 전날 입법예고를 통해 “법무부 소속기관 중 법무연수원의 글로벌 스탠더드(국제표준)에 맞는 법무행정 현대화 및 법제 정비, 국제형사사법협력 증진 및 연구 업무 강화를 위해 필요한 연구위원 5명을 증원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선 이 설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는 분위기다. 앞서 지난달 18일 한동훈 장관 취임 후 첫 고위간부 인사에서 이성윤·이정수·심재철·이정현 등 문재인 정부에서 승승장구하던 고검장·검사장 4명이 한꺼번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됐기 때문이다. 한 검사는 “지난 인사 때 현직에 잔류한 ‘친문재인’ 검사 중 상당수가 연구위원이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법무부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정원을 4명에서 9명으로, 5명 늘리는 직제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가운데 검찰 내에선 곧 있을 인사를 앞두고 '친문 인사' 좌천을 위한 절차를 밟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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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연수원이 처음부터 검사들의 ‘유배지’였던 건 아니다. 1951년 형무관(현 교도관) 교육훈련을 전담하는 형무관학교가 모태다. 62년 법무부 소속 일반직 공무원에 대한 교육도 병행하며 교도관학교로 이름을 바꿨다가 72년 검사에 대한 교육까지 담당하게 되면서 법무연수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올해로 출범 50주년을 맞는 법무연수원은 집합교육 160여개, 사이버교육 640여개 등 연간 32만명의 법무·검찰 공무원에 대한 교육훈련을 비롯해 형사정책·행형(行刑·수형자에 대한 교정·교화) 등 주요 법무행정에 관한 조사·연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이 중 조사·연구 부문에 배치되지만, 이들이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내놨다는 소식은 전해진 적이 없다. 검사장급인 연구위원은 1986년 당시 전두환 정부 막후 실세였던 박철언 서울지검 특수부장을 검사장으로 승진시키기 위해 신설됐다. ‘위인설관(爲人設官)’ 논란이 일었지만, 그는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에도 ‘6공 황태자’로 불리며 체육청소년부 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지금은 한직으로 여겨지는 법무연수원장도 당시엔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 국회의원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와 같았다. 연구위원도 검사장 승진을 앞둔 중간간부를 배려하기 위한 자리 정도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2002년부터는 사정이 바뀌었다. 당시 현직 고검장으로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됐던 김대웅 광주고검장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되면서다. 2009년에는 민유태 전주지검장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내사를 받게 되자 연구위원으로 발령됐다. 2012년 우병우 부천지청장 등 검사장 승진에서 누락된 간부 6명이 무더기로 연구위원이 됐고, 2016년에는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은 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연구위원으로 보내졌다. 문재인 정부 때도 예외는 없었다. 출범 직후인 2017년 6~7월 ‘우병우 라인’으로 지목된 윤갑근 대구고검장,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 전현준 대구지검장,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 유상범 창원지검장 등이 연구위원으로 전보됐다.
법무부는 지난 14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검사 정원을 5명 더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검찰 내 대표적인 '한직', '유배지'로 꼽힌다. 한동훈 장관 취임 이후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 이정수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을 연구위원으로 발령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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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시절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를 지휘한 한동훈 장관도 2020년 ‘채널A 사건’ 이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 지난해엔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대한 재소자들의 모해위증 의혹에 무혐의 결정을 한 현직 고검장들이 대거 연구위원으로 전보되기도 했다. 최근엔 네 차례의 좌천 인사에도 검찰에서 떠나지 않은 한동훈 장관이 그간 ‘윤석열 사단’으로 찍혀 지방을 전전하던 특수통 검사들을 요직에 앉히며 기존 ‘친문재인’ 검사들을 연구위원으로 보내거나 파견(이종근 대전고검 차장검사)했다. 이에 더해 5명을 증원하는 직제 개편이 김관정 수원고검장, 박은정 성남지청장 등 현직을 유지하고 있는 ‘친문’ 검사들에 대한 추가 좌천 인사를 단행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법무부 연구위원을 지낸 한 변호사는 “실제로 가보니 정말 할 일이 없더라”고 말했다. 망신주기 외에는 다른 목적이 있는 인사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한 법조계 인사는 “법무연수원도 교육훈련이란 중요한 기능이 있는 기관인데 유배지로 만들어버리면 소속 직원들이 어떤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간부도 “신임 검사나 저연차 검사들도 법무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는데 도대체 뭘 배우겠나”라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법조인은 “실질적인 연구 업무가 아닌 망신주기, 보복 인사로만 법무연수원 자리가 활용될 경우 국가 기능과 세금이 그만큼 낭비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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