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전날 이더리움은 약 1년 만에 처음으로 200만 원 아래로 주저앉았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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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시장에 긴장감이 감돈다. 심상치 않은 이더리움 가격 때문이다. 13일 오후 10시 코인마켓캡 기준 이더리움 가격은 1210달러로 24시간 전보다 16% 넘게 하락했다. 지난 4월 3500달러 수준이던 이더리움 가격은 지난달 초 루나 사태의 파장으로 2000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후 반등에 실패해 지난 12일엔 1500달러 선도 무너졌다.
시장이 이더리움 가격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암호화폐 업계의 금융 시장인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시장 때문이다. 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디파이 프로토콜에 암호화폐를 예치하면 이자를 받을 수 있고, 예치한 코인을 담보로 코인을 빌릴 수도 있다. 은행의 예금담보대출과 비슷하다. 이 디파이 시장 대출의 주요 담보물이 바로 이더리움이다.
이더리움 가격의 폭락은 디파이 시장의 붕괴로 이어지는 도미노의 첫 번째 블록이 될 수 있다. 시장이 긴장하는 이유다. 디파이 시장은 2020년까지만 해도 암호화폐를 잘 아는 이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암호화폐 투자자 사이에서 ‘이자 농사’란 투자 기법이 유행하면서 디파이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
이자 농사는 디파이 프로토콜에 코인을 맡기고 코인으로 이자를 받는 상품이다. 연 10% 전후의 이자를 받으며 맡긴 코인의 가격이 오르면 추가 이익을 거둘 수 있다. 지난달 폭락 사태를 만든 테라 프로토콜이 대표적이다. 테라는 업계 최고 수준인 연 19%의 수익률을 내세워 예치금을 끌어모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특히 지난해 암호화폐 상승장에서 알트코인 대부분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디파이 시장의 예치금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연구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전 세계 디파이 시장의 예치금은 2600억 달러(약 310조원)로 2020년 말보다 12배 늘었다”고 밝혔다.
'이자 농사'에만 만족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여러 디파이 프로토콜이 제공하는 예금과 대출 서비스를 활용해 수익률 극대화에 나섰다. 그 결과 제도권 은행을 통해 이뤄지는 신용 창출까지 암호화폐 시장에서 이뤄지게 됐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A프로토콜에 이더리움 10개를 예치하고, 이를 담보로 7개의 이더리움(혹은 다른 코인)을 빌린다. 디파이 프로토콜의 LTV(담보인정비율)는 일반적으로 70%다. 빌린 이더리움 7개를 B 프로토콜에 맡기면 추가로 이자를 받을 수 있고, 이를 담보로 다른 알트코인 C를 빌릴 수 있다.
투자자들은 여러 디파이 프로토콜 중 알트코인 C를 맡기면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D프로토콜을 찾아서 예치한다. 여러 프로토콜이 경쟁을 벌이면서 좋은 예치 조건을 제시하다 보니 테라 프로토콜처럼 예치 수익률이 대출 이자율보다 높은 기형적인 경우까지 발생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종잣돈의 수십 배에 달하는 신용을 창출하는 이른바 ‘풍차 돌리기’가 최근 코인 투자자 사이의 대세”라며 “암호화폐나 디파이에 대해 잘 모르는 투자자도 코인 투자 관련 유튜브 채널과 텔레그램 리딩방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묻지마 투자’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하락장이 찾아왔을 때다. 디파이 프로토콜은 대출 담보물의 가치가 하락해 대출 원금에 가까워지면 담보물을 강제 청산해 손실을 피한다. 청산을 막으려면 추가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선물 거래에서의 마진콜이나 주식을 신용 거래할 때의 반대매매와 비슷하다.
최근 이더리움 가격 하락 폭이 시장 예상보다 큰 배경에는 디파이 시장의 강제 청산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이더리움 가격이 떨어지자 여러 디파이 프로토콜은 높은 가격일 때 담보로 맡은 이더리움 등을 내다 팔았다. 디파이 프로토콜의 대량 매도 주문으로 이더리움 가격이 더 하락했고, 그 결과 청산 대상 담보물이 늘어나고 가격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디파이 시장 정보제공업체 디파이펄스에 따르면 디파이 시장의 담보물 가치(TVL)는 빠르게 줄고 있다. 지난 4월 초 800억 달러(102조원)에서 13일엔 430억 달러(55조원) 규모다. 두 달 사이 반 토막 가깝게 줄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도권 금융 시스템에는 여러 규제와 안전 장치가 있어 위험 신호가 나면 투자자 보호 체계가 작동하지만 블록체인 금융 생태계에는 이런 브레이크가 전혀 없다”며 “운 좋게 시장 붕괴까지 이르지 않고 하락세가 멈추더라도 디파이 시장의 거시 건전성과 안정성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지 않으면 결국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루나 사태 때와 달리 이더리움의 폭락이 '죽음의 소용돌이'까지 이르진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더리움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시가총액이 두번째로 크고 기술과 생태계가 견고한 만큼 가격 하락에 따른 저가 매수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돼서다.
디지털자산운용사 비브릭의 권용진 전략이사는 “디파이 시장에서 이더리움을 담보로 계속 다른 자산을 빌려서 레버리지를 키운 상황이 위험한 건 맞지만 루나·테라와 달리 이더리움 발 디파이 연쇄 청산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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