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 확보 어려워 미리 쟁여두기도…"물가 올라 힘든데 첩첩산중"
파업 장기화에 대비해 미리 소주를 확보해둔 홍대 인근 술집 |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이승연 기자 = "당장 이번 주 일요일부터는 소주를 못 팔 지경이에요."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유명 주점은 '불금'을 맞아 오후 5시께부터 전체 테이블 50여개 중 절반이 이미 손님들로 차 있었다.
하지만 주점 실장 손모(30)씨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손씨는 "이번 주말이 지나면 참이슬 물량이 동날 것 같다"며 "다른 전통주로 주종을 대체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 술집에서는 금요일과 주말에 평균 500병가량의 소주병이 판매되는데, 이번 주는 주문한 양의 절반인 250병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술병이 듬성듬성 비치된 냉장고를 보여주던 손씨는 "공간적인 한계가 있어서 소주를 미리 쟁여둘 수도 없다"며 "제일 잘 나가는 술이었는데 큰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12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민주노총 화물연대 총파업의 영향으로 주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주점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소주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업주들은 주종을 변경하거나 '사재기'를 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200여개의 테이블을 보유한 강남역 인근 대형 술집 운영자 30대 오모씨는 "일단 되는대로 주류를 많이 주문해놓고 있지만 지난 화요일에는 평소 주문량의 6분의 1 수준밖에 못 받았다"고 전했다.
오씨는 "도매점에서 직접 이천 공장에 가서 물량을 떼어오고 있어 급한 불은 껐다"면서도 "물가 상승과 파업이 겹쳐 코로나 거리두기로 손님이 없을 때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강남의 또다른 주점의 직원 이동우(26)씨도 "파업이 장기화될 것 같아 미리 물량을 확보해놓을 생각"이라며 "술집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원자재 값과 유류값이 오르면서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걱정했다.
파업 여파로 소주 유통 차질 |
홍대 거리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술집, 고깃집 등 가게 사장들은 조만간 찾아올 '소주 대란'을 우려했다.
소주 안주를 주메뉴로 판매하는 술집 사장 정모(44)씨는 "이미 일주일 전부터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는 파업 때문에 물량이 달릴 수 있으니 미리 소주 발주를 넣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었다"며 "우리 가게도 그때 평소보다 더 많이 물건을 떼 와서 아직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이웃들 얘기를 들어 보니 요청한 소주 수량의 절반 이하로 받는 경우가 있더라"며 "안심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곱창 등을 판매하는 한 고깃집 사장은 최근 고물가에 소주 수급 걱정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했다. 이 가게는 이틀 전 소주 10상자(1상자에 30병)를 주문했으나 3상자밖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작년과 재작년에 가게를 닫으려고 서너 번 결심했는데 버텼다"며 "최근 코로나19에 대한 분위기가 바뀌며 이제 좀 살아나려나 기대를 했는데 식자재비가 오르고 술도 마음대로 조달이 안 돼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은 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에 정부가 나서 해결책을 마련해주길 희망했다.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술집 매니저 이모(34)씨는 "소상공인들에게 몇십만 원씩 돈을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런 위기 상황에 정부가 파업 갈등을 해결해주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소주 회사들도 나 몰라라 하지 말고 운송 차량을 늘리는 등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win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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