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 범죄도시2(영화, BA엔터테인먼트), 나의 해방일지(JTBC 드라마, 스튜디오피닉스), D.P(넷플릭스 드라마, 클라이맥스스튜디오) [사진 각 배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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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의 존재감이 돋보였다. 공식 경쟁부문 수상작 ‘헤어질 결심’(감독상)과 ‘브로커’(남우주연상)뿐 아니라,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초청된 ‘헌트’,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상영된 ‘다음 소희’ 등이 영화제를 달궜다.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브로커’와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인 제작사(영화사집·사나이픽처스)가 만들었다. 2년여 전부터 제작사를 인수·합병하며 콘텐트업계에 뛰어든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이 밖에도 하정우·김남길 주연의 ‘야행’, 이병헌·유아인이 바둑 라이벌로 합을 맞춘 ‘승부’ 등의 작품 공개를 앞두고 있다.
한국 영상 콘텐트 시장에 대규모 스튜디오가 잇따라 등장하며 세력 판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 방송사나 소규모 제작사 중심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유통했다면, 이제는 다수의 제작사 및 유통채널을 가진 대형 스튜디오가 원천 IP(지적재산) 발굴부터 투자·제작·유통 등 전 과정을 주도하는 ‘할리우드형’ 스튜디오 시스템이 형성됐다. 플랫폼에 얽매이지 않고 OTT, TV 등을 통해 작품을 유통한다.
브로커(영화, 영화사집, 사진 왼쪽), 헌트(영화, 사나이픽처스, 오른쪽) [사진 각 배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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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의 선두에는 지난 3월 “글로벌 탑티어(Top-tier) 제작사가 되겠다”며 사명을 JTBC스튜디오에서 바꾼 SLL(Studio LuluLala)이 있다. 2019년부터 영화제작사 퍼펙트스톰필름, BA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등 콘텐트 제작 역량을 강화한 SLL은 현재 15개의 제작사를 보유한 대형 스튜디오다.
특히 지난해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D.P.’ 등의 흥행작을 비롯해 26편의 작품을 제작해 매출 5588억원으로 국내 1위(매출 기준) 제작사가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첫 ‘천만 영화’가 유력한 ‘범죄도시2’와 ‘추앙’ 붐을 일으킨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도 SLL 산하 제작사 작품이다. 지난 4월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정경문 대표이사는 “SLL은 JTBC 채널에서 방송하는 드라마만 만드는 스튜디오를 넘어섰다”며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튜디오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M의 합병으로 탄생한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웹툰·웹 소설과 음반·음원 유통, 매니지먼트, 콘텐트 제작·유통까지 아우르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다수의 제작사를 보유한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자회사 간 협업으로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예컨대, 올 초 인기를 끈 SBS 드라마 ‘사내맞선’은 동명의 카카오페이지 웹툰·웹 소설을 원작으로 자회사 크로스픽쳐스가 제작하고, OST 앨범도 자사 음악 레이블이 기획했다.
스튜디오 모델의 확산은 2016년 CJ ENM이 드라마 사업부문을 분할해 스튜디오드래곤을 신설하며 물꼬가 트였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급성장한 OTT를 매개로 K-콘텐트가 세계적으로 팔린 게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 구축을 앞당겼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해외에서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엔터테인먼트가 ‘돈을 벌 수 있는’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양질의 콘텐트 제작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점이 장점이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엔 지상파 방송사 등 유통 채널을 보유한 쪽에 창작자가 종속된 구조였다면, OTT 등장 후로는 여러 플랫폼이 웰메이드 콘텐트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실력 있는 창작자가 주도하는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K-콘텐트가 세계에 더욱 뿌리내리게 하는 데 스튜디오 생태계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형 스튜디오 소속 제작사 관계자는 “아직 독립 상태인 제작사 중 상당수도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오길 바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만 업계에서 주목받는 제작사 상당수가 대형 스튜디오에 이미 편입됐다는 점에서 후발 주자가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 대형 스튜디오에 속하지 않은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이미 흥행작을 만든 제작자는 이 시스템의 혜택을 받겠지만, 울타리 밖에 있는 IP 보유자나 경력이 없는 신인 제작자는 발굴될 기회가 적어지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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