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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혼돈의 가상화폐

[논단] 스테이블코인이 낳은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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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경수 성균관대 명예교수


우리가 기일내 갚아야 할 돈은 예금과 같이 신뢰할 수 있는 가치저장수단, 즉 안전자산의 형태로 준비한다. 안전자산은 대부분 거래의 결제수단으로 사용된다. 더욱이 금융회사, 정부, 대기업을 상대로 한 도매금융의 비중이 절대적인 현대 금융시스템에서 안전자산은 담보로도 활용되어 마치 주춧돌 같은 존재다.

안전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액면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없어야 하는데 의외로 그 종류가 많지 않다. 국채가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것은 과세권을 가진 정부의 빚이기 때문이다. 현금도 안전자산이나 보관하기 어렵고 (환매거래 시 담보로) 재사용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국채보다는 못하나 은행예금도 안전자산이다. 단기로 예금을 조달해 장기로 운용하는 은행업의 속성상 만기불일치와 신용위험이 있으나 자산운용에 엄격한 규제, 최종대부자인 중앙은행과 예금보험제도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글로벌금융위기는 부족한 안전자산에 근본적인 요인이 있다. 대완화기에 늘어난 유동성(신용)은 안전자산의 수요를 늘렸으나 그 공급은 여의치 못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미국채를 보유외환으로 쌓았기 때문이다.

당시 안전자산이 부족하자 대신 민간이 제조했다. 주택저당증권과 자산담보부증권에 기반한 부채담보부증권(CDO)과 대출담보부증권(CLO)이 그것이다. 글로벌금융위기는 이 AAA 증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심이 투매사태를 일으켜 일어났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은 암호화폐세계의 안전자산이다. 암호화폐의 가격변동성이 높아 거래 및 가치저장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 생겨났다. 이코노미스에 따르면 코인의 시장가치는 1700억달러에 이른다.

스테이블코인은 은행예금과 같다. 은행이 예금인출에 대비하듯이 코인을 발행한 주체도 환매에 대비하고 있는데 그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발행주체가 은행처럼 유동성과 신용이 매우 높은 자산을 보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은 은행예금처럼 공적인 보호장치가 없다. 대신 스스로 투명성을 위해 정기적으로 회계감사 보고서를 발행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알고리듬에 기반해 코인의 수요와 공급을 자동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이때 또다른 코인이 스테이블코인을 뒷받침하는데 상장폐지 된 테라와 루나가 그 예다. 이 코인이 몰락한 요인은 암호화폐가치의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암호화폐가치는 규제차익을 가능케하는 디지털기술에서 나온다. 허가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은행업은 인위적인 진입장벽이 있다. 이 장벽은 은행이 독과점적 체제를 구축하고 지대추구행위가 일어날 수 있게 한다. 비싼 국경간 송금수수료가 한 예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인터넷이 되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경제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인 것이다.

반면 은행은 공신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감독당국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암호화폐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건전규제와 제도의 뒷받침이 안전자산으로서 은행예금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한다.

초저금리 하에서 유동성이 넘칠 때 누구도 안전자산을 의심하지 않았고 암호화폐는 하늘을 뚫었다. 그러나 차고 넘친 유동성은 미래의 금융불안을 잉태하는 여건을 조성했다. 높은 물가상승압력에도 불구, 연준의 늦장대응이 가파른 금리인상을 예고하자 다시 안전자산은 의심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 의심은 알고리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에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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