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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물가와 GDP

관세카드 꺼낸 정부…돼지고기 20%, 커피원두 9% 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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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생안정대책 ◆

매일경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최근 대형마트에 들른 김 모씨는 "물가가 워낙 많이 올라 장보러 가는 게 무섭다"며 "식재료를 사서 해먹으나 외식을 하나 한 끼 값이 같아졌다"고 토로했다. 이달 급식업체 A사는 식자재값이 뜀박질하며 계약금액에 맞춰 음식을 내놓는 게 불가능해지자 급식 메뉴를 바꿨다. A사 관계자는 "치솟는 원재료값을 감당할 수 없다"며 "수입산 재료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고객사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솟는 물가에 민생 경기까지 얼어붙을 조짐을 보이자 30일 정부가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핵심은 수입 원재료에 붙는 세금을 깎아 수입 물가를 낮추고, 이를 통해 국내 생활물가 상승세를 잡아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식용유·돼지고기 등 식품 원료 7종에 대해 연말까지 0% 관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삼겹살 등 수입 돼지고기는 5만t의 수입 물량에 대해 현행 22.5∼25% 대신 0%의 관세율을 적용한다. 대두유(콩기름)와 해바라기씨유에 매기는 관세율은 5%에서 0%로, 밀가루는 3%에서 0%로 낮춘다. 이미 0% 세율이 적용된 사료용 뿌리채소류는 세율이 적용되는 물량을 70만t에서 100만t으로 늘리고, 당초 6월까지 0% 세율이 적용되는 계란 가공품은 연말까지 세제 혜택 기간을 늘린다. 수입 커피와 코코아 원두에 붙는 부가가치세(10%)는 내년까지 한시 면제한다. 정부는 관세 인하로 돼지고기 원가는 18.4~20%, 커피·코코아 원두 가격은 9.1%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가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원재료에 대한 세금을 낮춘 것은 최근 물가를 밀어올린 원인이 석유와 곡물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4.8%) 구성 요인을 분석하면 휘발유·경유와 가공식품처럼 원자재 가격에 민감한 공업제품 기여도가 2.7%포인트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외식 등 개인서비스 기여도도 1.4%포인트에 달했다. 즉, 최근 물가가 급등한 이유의 열에 여덟(85%)은 휘발유, 가공식품, 외식비 등 때문에 발생했다는 뜻이다. '원재료 관세 인하→수입 물가 완화→국내 물가 인하 유도→소비자물가 진정'의 물꼬를 트겠다는 포석이다.

이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가 공급 측면에서 오르는 물가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다"며 "경제주체들의 물가 상승 기대심리를 안정화하는 게 중요한 국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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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게 삼겹살 등 돼지고기 관세 면제다. 연간 돼지고기 수입물량은 43만t인데 이 중 약 90%는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미국, 유럽(EU)산으로 이미 관세가 없다. 이에 정부는 캐나다, 멕시코산 등 관세가 부과되는 5만t에 대해 한시적으로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면세 대상이 국내 돼지고기 생산량(109만t)의 4.5%에 그쳐 국내 양돈농가에 큰 영향은 주지 않으면서 수입 물가 상승은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물가 급등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이날 민생 조치로 월간 물가 상승률이 0.1%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29일 국회를 통과한 2차 추가경정예산으로 인한 물가 상승률이 0.16%포인트에 달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추경으로 풀리는 현금을 방어하는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크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할당관세가 적용되면 전반적인 시장가격 안정에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우크라이나 사태, 공급망 혼란 같은 대외 이슈가 지속되는 한 물가 상승 압력은 여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물가를 다스리는 관건은 물가와 함께 치솟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을 얼마만큼 진정시킬 수 있을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소비자가 예상하는 향후 1년의 물가 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이달 3.3%로 9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당장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5%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자재값 상승에 코로나19 거리 두기 해제와 새 정부 추가경정예산 편성, 임금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까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 상승 분위기에 편승한 가격과 임금의 연쇄 인상은 물가 상승 악순환을 초래한다"며 "물가 안정을 위한 각계의 협조와 동참을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야별 공급망 관리, 유통·물류 고도화, 공정 경쟁질서 확립 등으로 물가 구조를 전반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정환 기자 / 진영화 기자 /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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