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횡령액 늘고 수법 대담해져…고객정보 도용·서류 위조
횡령 횟수·금액 은행권이 최다…저축은행은 환수율 5.7% 그쳐
횡령 (PG) |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이지헌 오주현 기자 = 지난 5년여간 금융사에서 발생한 횡령 사건을 들여다보면 1인당 횡령 액수는 더 늘어나고 횡령 수법도 대담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적발된 직원들은 고객 정보를 도용하거나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 등으로 고객 돈이나 회삿돈을 몰래 빼다 썼고, 빼돌린 돈은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 등에 사용하기도 했다.
횡령 사건 규모가 커지는 것을 두고 금융권 안팎에선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강화와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1인당 횡령액 5년새 2억원→53억원
29일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 등에 따르면 은행·보험·카드·증권·저축은행 등 5대 금융업권에서 발생한 횡령 사건의 1인당 횡령액은 최근 5년 새 증가 추세를 나타냈다.
2017년 2억원 수준이었던 1인당 횡령액은 2018년 1억6천만원, 2019년 3억원, 2020년 7천만원, 2021년 7억3천만원, 2022년(5월 16일까지 기준) 52억9천만원으로, 코로나19 사태 직후였던 2020년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를 이어갔다.
특히 올해 들어선 지난달 불거진 614억원대 우리은행 거액 횡령 사건 여파로 1인당 횡령액이 급증했다.
채권단 자금을 관리하던 우리은행 한 본점 직원이 2012년부터 10년간 세 차례에 걸쳐 600억원 이상을 빼돌리는 동안 은행에서는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횡령 정황을 파악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금융사 직원의 범행이 창구에서 고객 돈을 가로채는 수준에서 벗어나 갈수록 치밀하고 대범해지고 있음을 가리키는 대목이다.
◇ 횡령 발생은 은행권이 '최다'…환수는 저축은행이 '최저'
금융 업권별로 살펴보면 횡령 직원 수와 금액 모두 은행권이 가장 많았다.
은행의 영업망 규모가 가장 큰 데다 고객과의 대면 접점도 가장 빈번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은행의 횡령 인원수는 2017년 10명, 2018년 19명, 2019년 20명, 2020년 19명, 2021년 14명으로 매년 두 자릿수대를 유지했다.
은행권 횡령액은 2017년 19억3천만원에서 2021년 67억5천만원으로 늘어 우리은행 거액 횡령 사건이 벌어진 올해를 제외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한편 환수액을 보면 저축은행권이 가장 저조했다.
2017년 이후 올해 5월 16일까지 저축은행 횡령 사건의 환수액은 총 8억4천만원으로, 전체 횡령액(146억8천만원)의 5.7%에 머물렀다.
은행권의 경우 환수율이 2017∼2021년 중 33.7%이고, 우리은행 거액 횡령 사건이 발생한 올해 5월 중순까지 포함해도 8.4%로, 저축은행보다는 높았다.
◇ 고객정보로 서류 위조해 대출받아 '한탕' 노린 투자
금융권 횡령 사건의 특징을 보면 빼돌린 자금을 주식, 가상화폐, 파생금융상품 등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았다.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로 평범한 직장인이 수억∼수십억원씩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등에서 심심찮게 나도는 가운데 남의 돈으로 큰돈을 벌고픈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주요 사례를 보면 2020년 우리은행의 한 영업지점 직원은 가상화폐에 투자할 목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은행 자금을 빼돌려 총 1억8천500만원을 횡령했다가 적발됐다.
NH농협은행에서는 지난해 한 직원이 대출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약 25억원을 횡령해 주식투자 등에 사용한 사건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직원은 고객 통장과 신분증 사본 등을 보관한 뒤 해당 고객의 정보를 도용해 대출 서류를 위조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나은행 부산의 한 지점에선 대출 담당 직원이 본인 앞으로 부당대출을 실행해 30억원을 횡령한 뒤 주식에 투자했다가 지난해 은행 자체 감사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우리은행에서 거액을 빼돌린 직원 전모씨도 횡령금을 주가지수옵션 등 고위험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한 사실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 금융당국은 내부통제 강화 주문…"감독 방안 개선해야"
금융사와 감독 당국은 금융사고 발생을 막기 위해 내부통제 강화에 나서겠다는 방침이지만 '사후약방문'식 조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금융감독자문회의 주재 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은행 횡령 사건과 관련해 "내부통제 문제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에 대한 수시 검사에 착수해 사건 발생 원인을 정밀히 파악하는 한편 다른 은행들에 대해서도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 통제 실태를 긴급하게 점검하도록 지시한 상태다.
금융사들은 그간 금융사고 발생을 막기 위해 직원 교육을 비롯해 내부 통제장치 강화, 자체 검사 강화 등 조치를 시행해왔다.
그러나 금융사고 액수가 커지고 수법이 정교해지고 있음을 보면 이런 내부통제책이 직원의 금융사고를 예방하는 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사 직원의 일탈 행위와 개별회사의 내부통제 미흡 탓만 하기엔 금융감독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 의원은 "금융위는 금융 권역별로 매년 1∼2회 실시하는 금융회사 내부통제워크숍을 분기별로 늘릴 필요가 있다"며 "또한 우리은행 횡령 사건에 대한 현장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금융감독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표] 2017∼2022년 금융권 횡령사건 현황
구분 | 인원수 (명) | 횡령액 (100만원) | 1인당 횡령액 (100만원) |
2017 | 45 | 8,988.7 | 199.7 |
2018 | 36 | 5,572.9 | 154.8 |
2019 | 28 | 8,473.7 | 302.6 |
2020 | 31 | 2,082.8 | 67.2 |
2021 | 21 | 15,265.8 | 726.9 |
2022 (∼5.16) | 13 | 68,797.6 | 5,292.1 |
※ 은행·보험·카드·증권·저축은행 업권 합산
※ 자료: 강민국 의원실·금융감독원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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