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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역사상 기초의원(구·시·군 의원) 비례대표 선거구 14곳의 유권자들은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출 투표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구 16개 당 1개 꼴이다. 지방선거 때마다 무투표 당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 총 무투표 당선인은 27일 기준 500여명으로 모두 거대 양당 소속이다. 대다수 영남·호남 지역에서 발생했다. 현행 무투표 당선 제도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의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기초의원 비례대표 지역구 14곳은 단 한번도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거를 치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지역은 대구 중구·달성, 전북 진안·무주, 경북 울릉·예천·청도·고령·성주·칠곡·군위·청송·영양·영덕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를 종합하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들 선거구 유권자 수는 72만여명이다.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거가 도입된 것은 2006년 4회 지방선거부터이다. 4회 지방선거 기초의원 비례대표 전체 선거구 230곳 중 31곳이 무투표 선거구였다. 5회는 230곳 중 54곳, 6회 227곳 중 65곳, 7회 226곳 중 28곳, 8회 226곳 62곳이 무투표 선거구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4곳 선거구 유권자들은 16년 동안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셈이다.
기초의원이란 구·시·군의회 의원을 뜻한다. 시·도의회 의원을 뜻하는 광역의원과 다르다. 기초와 광역 단위 모두 지역의원과 별개로 비례대표 의원을 두고 있다. 기초의원 비례대표는 국회의원 비례대표나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와 마찬가지로 지역구 후보자가 아닌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결정된다. 유권자는 각 선거구에서 후보가 아니라 정당에 투표한다. 각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자 순번을 정해 입후보시킨다.
기초의원 비례대표 의석수 배분은 5% 이상 득표한 정당에 한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의 경우 한 정당이 3분의 2이상을 차지할 수 없지만 기초의원 비례대표는 이런 제한이 없다. 이에 따라 특정 선거구에서 한 정당이 의석 100%를 가져갈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 이 경우 다른 정당은 후보자를 내지 않게 되면서 무더기 무투표 당선인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 알 권리 침해, 공약 실천 평가 저해
기초의회 비례대표 의원만이 아니다. 일부 광역의회와 기초의회는 2018년 7회 지방선거과 이번 8회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무투표 당선인을 냈다. 광역의원 지역구 선거에서는 대구 서구제1선거구, 광주 서구제1·북구제5선거구, 전북 전주시제1·전주시제5 선거구, 전남 완주군제1·순천시제2·제5·제6·담양군제1선거구, 경북 의성군제2선거구에서 잇따라 무투표 당선인이 나왔다. 기초의원 지역구 선거에서는 서울 영등포구바·서초구다·강남구가·송파구나, 부산 수영구다 선거구에서 최근 2회 연속 무투표 당선인이 선출됐다.
무투표 당선이란 선거를 통한 경쟁 없이 당선인이 선출되는 것을 뜻한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뽑아야 할 사람보다 출마한 사람이 적을 경우 투표 없이 당선인을 정하도록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2000년대 이래 무투표 당선인 수 역대 최다 기록을 갖게 됐다. 이날 기준 무투표 당선인은 총 509명이다. 기초단체장 6명, 지역구 광역의원 108명, 지역구 기초의원 295명, 비례대표 기초의원 99명, 교육위원 1명이다. 선관위가 후보자 등록마감 직후인 지난 14일 발표한 494명보다 15명 늘어난 수치이다. 역대 최다는 1998년 제2회 지방선거 738명이다.
무투표 당선인이 늘어날수록 유권자의 참정권은 제한된다. 투표를 치르지 않기 때문에 유권자는 다른 정치인을 선택할 기회 자체가 없다. 당선될 후보에 대해 호오를 표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유권자가 당선인에 대해 충분히 알 수도 없다. 무투표 당선자들은 투표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선거운동이 금지돼 있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후보자 정보나 공약 등 선거 공보물을 제공하지 않는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후보자 정보를 파악하는 방법은 선관위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확인하는 것뿐이다. 여기서도 공개되는 정보는 나이와 학력, 재산 등 기본적인 사항 정도가 전부이다. 공약을 볼 수 없으니 사후 실천 여부를 검증하기 어렵다.
■양당 지배·지역 구도 드러낸 ‘대규모’ 무투표 당선
무투표 당선은 거대 양당의 특정 지역 지배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또한 문제가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규모 무투표 당선은 거대 양당 독점과 지역 구도 문제를 한번에 드러냈다. 무투표 당선인 509명 중 교육의원을 제외한 모두가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민주당 282명·국민의힘 226명이었다.
거대 여야가 지역 구도에 편승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당선 가능성이 낮은 지역에는 아예 후보를 내지 않고, 당선에 유리한 지역에선 선출 정수에 맞춰 복수 후보를 공천하는 식이다. 일례로 민주당은 기초의원 지역구인 경북 예천군라·칠곡군가 선거구 등에서, 국민의힘은 전남 순천시자·나주시가 선거구 등에서 후보를 내지 않았다. 경북 예천군라·칠곡군가 선거구의 의원 정수는 2명, 등록 후보자도 2명으로 모두 무투표 당선됐다. 2명 다 국민의힘 후보였다. 전남 순천시자·나주시가는 각각 의원정수 2명·3명이었는데 민주당 후보만 각각 2명·3명 등록했다.
결과적으로 절반이 넘는 무투표 당선인이 영남과 호남에서 발생했다. 영남에서는 국민의힘이,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압도적 우세였다. 광주·대구·울산·부산에서 총 86명이 무투표 당선됐으며, 전남·북과 경남·북에서 194명의 무투표 당선인이 나왔다. 총 280명으로, 전체 무투표 당선자 중 55%를 차지했다.
광주 지역 무투표 당선자는 13명으로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대구(31명)에서는 2명의 민주당 소속 의원을 제외하고는 29명이 기초단체장 선거 및 기초·광역·기초비례 의원 선거에서 무투표로 당선됐다. 전남(57명), 전북(70명) 무투표 당선인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경북(44명)에서는 민주당 2명·국민의힘 42명, 경남(23명)에선 민주당 6명·국민의힘 17명의 무투표 당선인이 나왔다. 울산(7명)은 민주당 3명·국민의힘 4명, 부산(35명)은 35명 민주당 17명·국민의힘 18명으로 특정 정당의 우위가 또렷하지 않았다.
■무투표 당선, 어떻게 바꿀까
무투표 당선의 개선 방안은 그동안 여럿 제안됐다. 참여자치21 등 일부 시민단체는 지자체장뿐 아니라 기초·광역의회 의원 선거에서도 무투표 당선 후보자에 대해 최저 득표율 규정을 두거나 찬반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자체장 무투표 당선과 관련한 위헌확인 소송에서 “입법자는 후보자가 1인일 경우에도 투표를 실시하고 일정비율 이상의 득표를 할 경우에만 당선인으로 인정하는 방법이나 찬반투표의 실시 등…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무투표 당선 제도는 그대로 두되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도 논의됐다. 20대 국회에서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은 무투표 당선 예정자의 선거운동 제한·중지를 규정한 선거법 조항 삭제를 제안했다. 20대 국회에서 김병관 민주당 의원은 무투표 당선인의 당선 사실을 표시하면서 선거공보물을 발송하고 선전물이나 시설물을 게시할 수 있도록 관련 법 조항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비례대표 의원에 초점을 맞춰 무투표 당선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김래영 단국대 법대 교수는 2018년 논문 <공직선거법상 무투표당선과 관련한 몇 가지 쟁점>에서 “정당추천후보자가 비례대표의원정수를 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례대표 의원 선거를 실시하지 않는 것은 위헌·위법”이라고 했다. 공직선거법에는 기초·광역 단위를 포함한 지역구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을 규정한 조항만 있을 뿐(제190조), 지방의회 비례대표 의원의 무투표 당선 규정이나 준용 조항은 없다는 것이다.
정의당 등 제3 정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한 선거구에서 3~5명 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를 늘리자는 주장이다. 현행 ‘2인 선거구’는 양당이 1명씩만 후보를 내면 당선권에 속하는 인원을 모두 가져갈 수 있어 양당 지배체제를 공고화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중대선거구를 확대해도 양당이 복수의 후보자를 내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당별 입후보 인원을 1인으로 제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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