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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노역보다 정부 무관심 더 힘들었다" 尹취임식 온 국군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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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복씨는 1953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이후 40여년간 탄광 등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2010년 탈북했다. 한국에 정착한 이후 그는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구를 움직이고 있다. 사진은 한국전쟁 당시 고지전을 벌이고 있는 한국군의 모습.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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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6월 10일, 5사단 27연대 소속의 한 이등중사(하사)가 아군 고지를 벗어나 골짜기를 넘기 시작했다. 불과 1km 앞 고지에 마주하고 있는 북한군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적군은 이미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던 상황. 별안간 포탄이 날아들었고, 허벅지와 종아리에 파편이 박혀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결국 인민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한국전쟁 정전 협정이 체결되기 한 달 전에 생긴 일이었다.

포로 신세였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분대장과 지휘관, 그리고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북한에 끌려간 포로를 모른 척 하진 않을 것이란 믿음에서다. 하지만 23세 청년이던 이등중사는 이후 40년간 북한 탄광에서 지옥 같은 강제 노역을 계속해야 했다. 한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그는 70세가 되던 2000년, 생의 마지막은 고향 땅에서 보내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탈북을 시도했다. 국군포로 유영복(92)씨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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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유영복씨. 유씨는 당시 국감장에서 국군포로 문제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을 지적하고, 조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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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가 탈북 후 한국에 정착한 지 12년이 흘렀다. 그 사이 대통령이 세 차례나 바뀌었고, 그때마다 “이제라도 정부가 국군포로 문제 해결에 나서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뿐이었다. 특히 전임 문재인 정부에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개최되며 북한과의 대화 창구가 활짝 열렸음에도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유씨는 지난 20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이 이미 여러 차례 ‘북에 남은 국군포로는 없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하면 오히려 대화가 헝클어지고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생길까 주저한 것 같다”며 “역대 어느 대통령도 국군포로 문제에 무관심한 세월이 쌓여 이제는 모두가 너무 지쳤고 좌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국전쟁과 같은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참전하는 군인들은 ‘내가 포로로 붙잡혀도 정부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을지 모른다’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대 큰 만큼 걱정도. 끝까지 책임 다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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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일씨, 김성태씨, 유영복씨(왼쪽부터) 등 세 명의 국군포로는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태영호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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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이 국군포로를 초청했다. 국군포로 초청은 이번이 처음이다.

A “그간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다시 희망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취임식 예행연습으로 새벽 4시부터 바쁘게 움직였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국군포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이란 기대 덕분이다.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사실 너무 늦었다. 귀환한 국군포로는 대부분 사망했고, 북한에 남아있는 분들 역시 마찬가지 상황일 거다.”

Q. 윤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호국·보훈을 강조했다.

A. “기대가 큰 만큼 걱정도 앞선다. 정부가 국군포로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생각이라기보단 그저 정부 출범 초기 홍보용으로 활용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부디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고 끝까지 정부의 책임을 다해주길 바란다.”

Q. 정부의 무관심 속 정확한 국군포로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는 상태다.

A. “북한에 있을 때 다른 포로들과 함께 ‘정부가 우리를 잊진 않았을 것’이라고 수없이 자기 위안을 했다. 하지만 이미 한국 정부에 국군포로는 잊힌 존재였다. 40년 넘는 강제노역보다 조국의 무관심이 더 견디기 힘들다.”

Q. 국군포로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선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A. “우선 한국전쟁 당시에 몇 명의 국군포로가 북한에 끌려갔는지, 그중 몇 명이 사망했고 생존자는 있는지 밝혀야 한다. 북한에 살아 있는 국군포로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데려와야 한다. 그리고 국군포로에 대한 예우를 갖춰야 한다. 돈이나 훈장 같은 거창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가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노예 생활을 한 데 대한 예우와 미안함, 고마움을 표해주길 바란다.



北 인권결의안에 담긴 '국군포로'…"당사자인 정부가 나서야"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달리 국제사회에선 국군포로 문제를 명백한 인권 침해로 인식하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최초로 국군포로 문제가 명시됐다. “미송환 전쟁포로와 그 자손들에 대한 지속적인 인권 침해에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 정부는 이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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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당시 토마스 오헤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한국을 방문해 탈북 국군포로와 면담을 가졌다. [물망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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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 2월엔 토마스 오헤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만나기도 했다.

A. “북한에서 생활하는 국군포로 후손들의 고통을 설명했다. 그들은 국군포로의 자식들이란 이유로 차별을 받고, 부모와 마찬가지로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있다. 면담 요청을 수락한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관심이 없다면 유엔에서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Q. 북한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국군포로에 대한 배상 문제도 남아 있다.

A. “국군포로 중 상당수가 무보수로 탄광 등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폐인이 되도록 사람을 부려먹었으니 북한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법원은 강제노역 뒤 탈북한 국군포로에 대한 북한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에 배상을 요구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라도 대신 배상을 하라는 거다. 물론 배상은 돈 문제지만, 누구든 국군포로 강제노역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돈 문제만은 아니다.(※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은 북한의 저작권 사무국과 계약을 맺어 국내에서 사용된 북한의 영상·저작물 저작권료를 대신 징수해 북측에 송금한다. 국군포로들은 경문협을 상대로 한 추심금 소송에서 패소하자 지난 1월 항소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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