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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노무현 13주기 추도식에 여야, 봉하 총집결…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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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이 치러진 23일, 더불어민주당 6.1 지방선거 주요 후보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며 지지 호소에 나섰다. 대선 패배 후 지지층을 결집할 마땅한 계기가 없던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이 분위기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은 23일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노 대통령께 드렸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서 참으로 안타깝고 죄송하다"면서 "사람 사는 세상의 꿈,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의 꿈, 앞으로도 잊지 않고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추도식에 앞서 유튜브 <박시영TV>에 출연해 "노 전 대통령이 열어준 길을 따라 잘 왔는데 이제는 가셔서 저 혼자 길을 개척해야 한다"며 "노 전 대통령이 했던 결단과 용기, 도전정신, 국가나 국민에 대한 깊은 애정, 충성심 등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배우자 권양숙 봉하재단 이사장이 과거 자신을 노 전 대통령과 닮았다고 평가했던 일에 대해 "영광스럽다"며 "사법연수원 때 (노 전 대통령을) 만나 뵙고, 말씀도 듣고 했는데 멋있다, 닮아야지 그런 생각도 했다. 스타일이 비슷한 측면도 있다"고도 했다.

이 위원장은 추도식 참석 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비공개 오찬을 한 사실도 전했다. 오찬 자리에는 민주당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박홍근 원내대표 등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장은 "워낙 많은 분이 계셔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긴 어려웠다"며 "(문 전 대통령이) 일부러 사진도 하나 찍어주시긴 했는데, 지난달 11일 청와대에서 늦게까지 술 한 잔하고 말씀도 많이 듣고 드리고 했다"고 밝혔다.

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이날 오전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고 "13년 전의 일이 반복될까 두렵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대선 후보에 대한 음해와 공격, 수사가 이어지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고 밝혔다. 송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전직 대통령 수사에 착수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 당에서 경쟁했던 대선 후보들에게 정치적 자객을 보내 제거하는 비정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 기일을 맞아 '문 전 대통령과 이 위원장을 지키기 위해 결집해 달라'는 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보낸 셈이다. 그는 "대통령님을 떠나보낸 지 13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비통함은 마치 오늘 일처럼 저리다"며 "노무현 대통령님의 말씀을 다시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했다.

송 후보는 지난 21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일대 유세에서도 "2009년 5월23일 눈물과 빗물이 구분되지 않고 운 봉하의 밤을 잊을 수가 없다"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도록 이재명과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고 민주주의와 서울을 지켜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한 바 있다.

추도식은 전반적으로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공식 추도사를 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대선 패배 후에 기운이 나지 않고 뉴스 보기 싫다는 사람이 많다. 그럴수록 더 각성해서 민주당을 키워나갈 수 있는 힘을 모아 달라"고 사실상 지방선거를 겨냥한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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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서 권양숙 여사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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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전 대통령, 정치 메시지는 없었으나 이재명과 도시락 오찬

이날 행사에서는 무엇보다 문 전 대통령의 참석이 눈길을 끌었다. 퇴임 후 2주 만의 공개 일정이자, 5년 만의 추도식 참석이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7년 8주기 추도식에서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후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었다.

민주당 측은 내심 문 전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김민석 공동 총괄선대본부장은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23일 봉하(추도식)을 거치면 대선 이후 잠들어 있던 민심이 기지개를 펴고 일주일 후로 다가온 선거를 어떻게 할 건지 고민을 시작할 것이다. 실제 판세는 그때부터"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이 정치적 발언을 내놓을지 촉각이 모아졌으나, 별다른 언급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추도식 참석만으로도 객석의 반응을 이끌어내며 여전히 높은 영향력을 입증했다. 행사 도중 좌중으로부터 몇 차례 "문재인" 연호가 나왔고, 문 전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객석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기도 했다.

추도식에 앞서 이 위원장과 오찬을 함께한 것 자체가 정치적인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위원장이 계양을 보궐선거에서 여론조사상 접전을 펼치며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자, 문 전 대통령이 이 위원장에 힘을 실어준 것 아니겠냐는 관측이다.

이날 야권에서는 이해찬·이낙연 전 대표, 한명숙·정세균 전 총리, 문희상 전 국회의장,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친노·친문 원로들이 대거 자리했다. 윤호중·박지현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비롯해 조응천·이소영·배재정·채이배·김태진·권지웅 선대위 공동부위원장, 김민기·김민석 공동총괄본부장, 김성환 정책위 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는 물론 양문석·김동연·박남춘·송철호 등 지방선거 출마자들도 대거 참석했다. 문재인 정부 비서실에서는 유영민·서훈 전 실장과 유연상·이철희 수석 등이 참석했고, 김대중 대통령 유족 대표로는 김홍걸 국회의원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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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 이진복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이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 참석,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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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대거 참석...한덕수 "盧 전 대통령 철학 분명...성숙한 민주주의 위해 노력해야"

국민의힘 또한 이날 추도식에 야권 못지않게 인원을 대거 투입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초대 총리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해 주목받았다. 한 총리는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총리이기도 했지만, 현직 보수정부 총리로서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됐다. 야당을 존중하고 협치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중도층 민심을 얻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 총리는 이날 추도식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은 분명하셨다. 민주주의가 잘 돼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잘 되려면 결국 갈등 분열이 대화와 타협 그리고 일종의 통합과 상생으로 돼야 된다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충분히 우리가 성숙한 민주주의가 됐다, 이렇게 자신 있게 얘기하기가 역시 또 좀 어렵지 않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통합, 협치 이런 얘기를 한다"면서 "진짜 성숙한 그런 민주주의, 그게 결국 경제도 잘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노력을 좀 더 해야 되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아울러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나라 정치 역사상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추도식에 불참한 윤석열 대통령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한 총리 외에도 여권에서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대기 비서실장, 이진복 정무수석 등이 참석했다.

이 대표는 추도식을 마치고 권 이사장과 별도 면담을 한 후 대화 내용에 대해 자신이 "앞으로 더 많은 의원들이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올 것"이라며 "협치의 틀도 그렇고 노 전 대통령을 모시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권 이사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몇 번 좋게 말씀하신 것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고 한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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