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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발트3국 중 가장 작은 이 나라... 反푸틴 선봉에 선 45세 ‘철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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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에스토니아 카야 칼라스 총리<BR>전쟁 전부터 “가스관 끊자”<BR>“유럽, 러시아 의존도 줄여야… 푸틴은 전쟁기계, 대화 무의미”<BR>GDP 대비 우크라 지원 세계 1위<BR>어릴적 옛 소련 체제서 자라 “자유는 값을 매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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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 /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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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에 있는 에스토니아는 발트 3국 중에서도 가장 작은 나라다. 면적은 한반도의 5분의 1 정도이다. 인구는 약 122만명이다. 세계 최대 인터넷 전화 업체인 스카이프가 탄생하고 전국 대부분 지역이 무료 와이파이존인 IT 강국이지만, 유럽에선 변방에 가깝다.

이 소국(小國)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국면에서 발군의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독일의 킬 세계경제연구소가 지난 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24일부터 4월 23일까지 3개월간 각국의 군사, 재정 및 인도적 지원을 집계한 결과 에스토니아는 국내총생산(GDP)의 0.8%인 2억달러(약 2500억원)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GDP 대비 지원액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같은 기간 112억달러를 지원한 미국은 GDP 대비 0.05%로 열 번째였다.

에스토니아의 이 같은 움직임에는 카야 칼라스(45) 총리의 강력한 의지가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는 “칼라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유럽 지도자”라고 전했다. 1977년생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동갑내기인 그는 산나 마린(37) 핀란드 총리, 로베르타 메솔라(43·몰타) 유럽의회 의장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젊은 여성 지도자로 꼽힌다.

중도 우파 성향의 개혁당 대표인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전인 지난 1월 새 연립 정부 구성과 함께 총리에 올랐다. 1918년 에스토니아 건국 이후 첫 여성 총리였다. 그는 취임 직후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야욕을 꺾기 위해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부터 줄여야 한다”며 ‘노르트스트림2(러시아에서 발트해 해저를 지나 독일로 연결되는 천연가스 수송관)’의 폐쇄를 주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푸틴은 ‘전쟁 기계(war machine)’” “푸틴과 대화해서 나올 게 없다” 등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칼라스 총리는 독일 등 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인 유럽 국가에 각성을 촉구했다. 지난달 독일 베를린 나우만 재단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비용의 급등이 초래할 경제적 고통 때문에 많은 지도자들이 러시아산 가스 수입 금지를 선뜻 선택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안다”면서도 “가스는 비쌀 수 있지만, 자유는 값을 매길 수 없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패배한다면, 이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우리의 패배”라고 말했다.

국제 여론의 압박을 받은 독일은 20일 우크라이나에 10억 유로의 재정 지원을 약속하고, 지난달 말부터는 그동안 거부했던 중화기도 제공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테이츠먼은 “발트해의 지도자가 유럽 자유 진영의 선봉에 서고 있다”며 “칼라스 총리는 유럽에 나타난 새로운 ‘철의 여인(Iron lady·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별명)’”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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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태어난 칼라스 총리는 열네 살이던 지난 1991년 조국이 독립할 때까지 구소련 체제에서 성장했다. 어머니 크리스티가 생후 6개월 때 할머니와 함께 시베리아로 추방당한 일을 베갯머리 이야기로 듣곤 했다고 한다.

그는 “열한 살 때인 1988년 아버지와 공산권인 독일 동베를린으로 여행을 갔다. 그때 아버지가 서베를린 쪽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쉬어보아라. 이것이 자유의 냄새란다’라고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딸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했던 아버지 시임 칼라스는 1990년대 에스토니아 중앙은행 총재로 조국에 자본주의가 안착하는데 공헌했고, 2002~2003년 총리를 지냈다. 19년 후 딸이 대(代)를 이어 총리가 되어 ‘발트의 호랑이’라 불리는 에스토니아를 이끌고 있다.

칼라스 총리는 최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연대 의식을 등에 업고 의사 결정이 빠른 소국의 장점을 살려 지원을 아끼지 않을 수 있었다”며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가치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미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은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EU와 나토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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