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광주 5·18 민주화운동 제42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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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광주에서 열린 5ㆍ18 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 100여 명이 참석해 나란히 손을 잡은 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보수 정당 인사들이 기념식에 총출동해 이 노래를 일제히 따라 부른 건 처음이다.
보수 진영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불온한 노래'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선 "운동권 노래를 어떻게 정부 행사에서 부르나" "호남에선 애국가 대신 부르는 노래다" 같은 편견 속에 노래를 부르는 방식을 국가보훈처가 제창에서 합창으로 격하시켰다. 제창과 합창의 사전적 의미엔 큰 차이가 없으나, “제창은 참석한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부르는 것"이고, "합창은 합창단이 부르면 원하는 참석자들만 따라 부르는 것"이라고 당시 국가보훈처는 규정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제창에 동참하면서 논란에 일단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ㆍ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씨와 1979년 광주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숨진 노동운동가 박기순씨의 영혼 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노동운동가 고(故) 백기완씨의 시 ‘묏비나리’를 소설가 황석영씨가 다듬어 가사를 썼고, 전남대 재학생 김종률씨가 작곡했다. 이후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역사를 담은 상징적 노래임을 인정받아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부터 정부 주관으로 열리는 5ㆍ18 기념식에서 제창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5년 내내 기념식에 참석해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가 부침을 겪기 시작한 건 이명박 정부 때부터다. 보수 진영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임’이 김일성을 상징한다거나, 북한 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1991년)’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노래여서 부적절하다는 논리를 폈다. 근거가 빈약했지만, 2009년 기념식에선 제창이 기념식 식순에서 빠지고 식전 행사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2011년 식순에 다시 포함하긴 했지만, 합창 방식은 그대로였다.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13년 기념식에 참석했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자 노래를 부르지 않고 태극기만 흔들었다. 박승춘 당시 국가보훈처장이 별도의 기념 노래를 제정하겠다고 밝혀 보혁 갈등은 더욱 증폭됐고, 박근혜 정부에서 박 처장에 대한 국회 해임촉구결의안이 세 차례 제출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박 처장을 바로 경질했고, 다시 제창이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같은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광주= 서재훈 기자,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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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영의 태도는 ‘서진(西進) 정책'을 계기로 조금씩 달라졌다. 국민의힘은 2020년 8월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5ㆍ18 민주묘지 ‘무릎 참배’를 시작으로 친 호남 정책을 추진했다. 지난해 5ㆍ18 기념식 당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은 주먹을 아래위로 흔들며 제창했다. 올해 기념식에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 부처 장관, 대통령실 참모들이 이 노래를 제창하며 ‘보수 정권은 합창, 진보 정권은 제창’ 공식을 깬 것이다. 이준석 당대표는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이 말끔이 해소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기념식을 찾아 노래 일부 소절을 제창하며 통합 행보를 했지만, 보수의 반발에 이듬해부터 기념식에 불참하고 합창으로 격하한 전례가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오늘 통합 행보를 내년, 후년 기념식 때도 그대로 보여줘야 소모적 논란이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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