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지났어도 트라우마 여전…50여명 극단 선택
5·18 민주화운동 42주년 뉴스룸을 시작합니다. 지난해 전두환 씨가 사망한 날, 5·18 피해자 4명이 동시에 세상을 등진 걸로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JTBC의 취재 결과, 우연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이 중 한 명인 고 이광영 씨는 오랜 통증 끝에 세상을 떠난다는 짧은 유서를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50명이 넘는 5·18 피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습니다. 피해자의 부모와 형제, 자식까지 범위를 넓히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습니다. 오늘(18일) 뉴스룸은 42년 전 그날이 남긴 끝나지 않은 트라우마의 실태를 집중 조명합니다.
먼저, 라정주 피디입니다.
[기자]
나는 5·18 부상자 이광영입니다.
사람들이 총을 맞아 쓰러졌고, 우리는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던 중 날아온 계엄군의 총탄.
그렇게 두 다리를 잃었지만, 그날의 진실만 밝힐 수 있다면…
[고 이광영 씨 (2019년 광주지방법원) : (전두환 씨의 주장은) 우리 역사와 우리 국민들을 무시하는 엄청난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본 상황만큼은 하늘이 무너져도 진실입니다.]
40년 노력에도 진실은 침묵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5·18과 스스로 이별합니다.
전두환 씨는 지난해 11월 23일 숨졌습니다.
같은 날 전남 강진 저수지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됐습니다.
이광영 씨였습니다.
[이광성/고 이광영 씨 동생 : 이게 척추 M16 총탄 자리인데 이것 때문에 우리 형님의 인생을 그냥 하루아침에 망쳐버렸어.]
오랜 통증 끝에 떠난다는 짧은 유서.
형에게 42년 전 5·18은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이광성/고 이광영 씨 동생 : 최루탄 소리에 도망가고 잡혀가지고 또 고문당하고 누가 쫓아오고 낭떠러지에 떨어지려 하고 그러니까 잠자다가 일어나서 그냥 이상한 소리하고 그런 환청 속에서 평생을 보내신 거 같아요.]
동생은 누구보다 진상규명에 앞장 섰던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이광성/고 이광영 씨 동생 : 우리 형님이 여기로는 오시기 싫어하셨는데 내가 여기로 모셔놔서 항상 마음속으로 미안하고 죄송하고…]
이광영 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 3명도 이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지현/5·18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 : 전두환이 죽었던 작년 11월 23일날 그때 저희 회원들 네 분이 그날 또 돌아가셨잖아요.]
이지현 씨의 여동생도 1983년 9월 세상을 등졌습니다.
가족들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겁니다.
5·18 국가폭력 트라우마는 40년 넘게 자살로 이어져 왔지만, 정부도 관련 기관도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않고 있습니다.
(VJ : 김민재 / 영상그래픽 : 김지혜·김정은)
라정주 기자 , 구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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