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차 타고 있는 5·18 시위대 |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1980년 5월 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현장에서 조준사격을 받고 숨진 장갑차 위 청년은 당시 17살이었던 목공소 견습생 김준동(만 17세) 군으로 밝혀졌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12일 대국민 보고회를 통해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조사 성과를 발표했다.
조사위는 도청 앞 집단 발포가 자행된 21일 오후 2시께 전일빌딩 옥상에 저격수로 배치된 11공수여단 한모 일병으로부터 장갑차 위 청년 1명을 저격해 숨지게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당시 이 청년의 시신은 계엄군 차량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숨진 이 청년이 누구인지 특정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 조사위는 저격 직후의 상황을 촬영한 조선일보 기자의 사진 2점을 추가 발굴하고, 이 사진과 적십자 병원에 안치된 시신 사진을 정밀 분석해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특히 사진의 위치와 시간, 저격수의 위치 등을 공간정보 플랫폼에 적용해 현장 상황을 재구성하고, 시체의 외관과 병원에 안치된 시체의 특징, 5·18 기록관에 소장된 김준동의 유품을 정밀 대조했다.
당초 김준동의 시신은 '염동휴'라는 이름으로 매장됐다가 염씨의 생존이 확인되면서 신원미상 무명 열사로 망월묘역(5·18 구묘역)에 매장돼 있었다.
시신을 찾지 못했던 유가족은 그를 행방불명자로 신청한 상태였다.
2001년 망월 묘역에서 현재의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무명열사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김준동의 신원이 확인됐지만 그의 사망 경위는 지금까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11명의 무명 열사 가운데 김준동을 포함한 6명의 무명열사의 신원이 밝혀졌다.
조사위 관계자는 "저격수로 참여한 가해 당사자들을 특정하고 저격 명령과 실행 과정을 조사하던 중 사건의 전말을 확인한 최초의 사례"라며 "앞으로도 집단 발포 명령과 지시, 실행 과정 등에 대해 계속 진실을 규명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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