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정치지형 속 당분간 '文의 메시지' 관심 쏠릴 듯
정치에 거리 둔다지만…盧 추도식·바이든 만남 등 굵직한 일정 이어져
꽃다발 받는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 |
(서울·양산=연합뉴스) 임형섭 박경준 기자 = "저는 이제 해방됐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10일 임기를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경남 양산 사저로 향하는 도중 지지자들을 만나 세 차례나 '해방'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정치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권교체기 복잡한 정치지형, 한반도를 둘러싼 엄중한 안보상황 등을 고려하면 문 전 대통령이 본인이 공언한대로 '잊혀진 사람'이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해방' 강조하며 정치권 거리두기…"자유롭게 살겠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퇴임 후 계획에 대해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이후, 수 차례에 걸쳐 임기를 마친 뒤에는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조해 왔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양산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지지자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자유인이 됐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겠다" 등의 언급을 되풀이했다.
문 전 대통령은 또 "재임 기간 내내 힘들었다"며 그동안 대통령으로서 느낀 정치적 압박감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내비치기도 했다.
청와대 참모들 역시 문 전 대통령이 향후 정치적 메시지를 내거나, 언론의 주목을 받을 만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자신을 찾아오는 시민들을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문 전 대통령은) 시간을 정해 프로그램처럼 국민을 만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답했다.
문 전 대통령 스스로도 이날 지지자들에게 앞으로의 삶에 대해 "주민들과 함께 농사도 짓고, 막걸리 잔도 한잔 나눌 것"이라며 정치와 거리가 있는 삶을 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신구권력 갈등·전(前) 정권 수사·민주당내 힘싸움…곳곳 변수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잊혀진 삶'을 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우선 정권교체기 새 정부가 문재인 정부 흔적 지우기에 나서며 신·구 권력 사이의 신경전이 불거질 수 있다.
또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점한 상황에서 새 정부와 야당 사이의 갈등이 빚어진다면 이는 마치 윤석열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대리전' 처럼 비칠 가능성이 있다.
문 전 대통령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권의 시선이 문 전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제까지 매 정권 반복됐던 '전(前) 정권 수사'가 이번에도 벌어질 경우 신구 권력의 갈등이 극에 달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대선 이후 민주당 세력 지도가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는 점도 지켜봐야 한다.
특히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이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하고 차기 당권 도전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보폭을 넓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향후 '친문(친문재인)' 그룹과 '친이재명' 그룹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결국 친문그룹의 움직임, 또 이에 대한 문 전 대통령의 생각에 당 안팎의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 盧 추도식·바이든 만남 등 일정 대기…'메시지' 최적화 순장조
정치권에서는 당장 이번 달 문 전 대통령에게 예정돼 있는 일정만 보더라도, 당분간은 문 전 대통령이 언론에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이달 23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13주기 추도식이 열린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7년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을 참석한 이후로는 추도식에 계속 불참했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최근에는 "퇴임 뒤에는 추도식을 찾지 않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올해는 참석할 수 있다는 뜻을 주위에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이 추도사 등 공식 연설을 할지 단순히 참석만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많은 지지자들의 눈은 자연스레 문 전 대통령의 '입'으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과의 21일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입국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
탁 전 비서관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만간 만남의 내용이나 형식에 대해 발표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엄중한 한반도 정세 등을 고려하면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남 외에도 외교·안보 분야에서 문 전 대통령이 역할을 할 여지가 점점 많아지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의 순장조가 오종식 전 기획비서관, 신혜현 전 부대변인 등 메시지 관리나 대언론 소통에 특화된 참모들로 구성됐다는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문 전 대통령 역시 어떤 형태로든 메시지 관리나 대언론 소통이 필요한 때가 올 수 있다는 점을 직감하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hys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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