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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가문 귀환’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당선 확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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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 현 대통령 딸도 부통령 당선
한국일보

필리핀 대선 후보인 페르난디드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이 7일 마닐라 인근 파라냐케에서 열린 마지막 공식 선거 유세에서 국기를 흔들며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파라냐케=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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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을 철권 통치한 ‘독재자’의 아들이 다시 권좌에 앉았다. 전 상원의원인 페르난디드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가 9일(현지시간) 치러진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며 사실상 당선됐다.

필리핀 현지 ABS-CBN 방송은 이날 오후 10시 32분 개표율 73.9% 상황에서 마르코스 후보가 2,407만 표를 얻어 경쟁자인 현 부통령 레니 로브레도 후보(1,144만 표)를 크게 앞섰다고 보도했다. 두 후보 간 득표수 격차가 두 배 이상 벌어지면서 남은 표와 상관없이 마르코스 후보의 당선이 굳어졌다.

마르코스 후보는 1965년부터 1986년까지 21년간 필리핀을 통치하면서 민주화 인사 7만여 명을 투옥하고 정적까지 암살했던 페르난디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로, 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버지 마르코스는 1986년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하야한 뒤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3년 뒤 사망했다. 1990년대에 필리핀으로 돌아온 아들 마르코스는 정치적 고향인 북부 로코스노르테주를 기반으로 정계에 진출했고, 주지사와 상원의원에 잇달아 당선되며 인지도를 높였다.

부통령 선거에서도 마르코스 후보와 러닝 메이트를 이룬 현 다바오 시장 사라 두테르테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두테르테 후보는 2,388만 표를 얻어 721만 표를 획득한 현직 상원의원 프란시스 팡길리난 후보를 3배 이상 앞서고 있다. 두테르테 후보 또한 ‘마약과의 전쟁’을 구실로 민간인 6,000여 명을 살해해 국제형사재판소(ICC) 조사를 받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딸이다. 그래서 필리핀 현지에선 두 후보를 조롱하는 의미를 담아 ‘독재가문 어벤져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대로 반전 없이 개표가 끝난다면 차기 대통령과 부통령은 독재자의 아들과 딸이 이어받게 된다. 특히 마르코스 후보의 경우 36년 만에 독재자 가문이 귀환하는 셈이어서 더욱 눈길이 쏠린다.

필리핀 정계에선 두 가문 간 결합이 지지층을 넓힌 원동력이 된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10월 대통령 후보 등록이 시작되기 전까지 마르코스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다소 밀렸으나, 두테르테 후보와 러닝 메이트를 구성한 이후 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에 힘입어 지지율이 급격히 올라갔다. 대선 직전 여론조사에선 지지율 56%를 기록하며 경쟁자 로브레도 후보(23%)를 압도했다.

젊은 유권자들이 독재정권을 경험하지 못한 것도 한 가지 이유로 거론된다. 하이메 나발 필리핀국립대 정치학 교수는 “마르코스 후보를 지지하는 30대 이하 젊은층은 그의 선친 치하에서 부패와 인권탄압을 겪지 않았다”면서 “이들은 과거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미화되고 왜곡된 이야기에 노출돼 왔다”고 진단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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