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6.4원 내린 달러당 1272.7원에 거래를 마쳤다. 사진은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의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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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종료된 한·미 통화스와프 부활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 여파로 한미 금리 역전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원화 가치 약세가 이어지면서다.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오는 2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상시 통화스와프 개설을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했지만, 실현 가능성 등을 따져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통화스와프는 특정한 날짜나 기간(만기)을 정해 기간 내에 미리 약속한 환율에 따라 서로 다른 통화를 교환하는 외환 거래를 뜻한다. 원래는 금융시장의 파생상품 중 하나였다. 이후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를 통해 자국 필요할 때 자국 통화를 상대방 중앙은행에 맡기고 그에 상응하는 외화를 빌려와 쓸 수 있게 됐다. '외화 마이너스 통장'인 셈이다.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가 등장한 건 2001년 9·11 테러 때다. 금융시장의 일시적인 유동성 경색을 막기 위해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영국·캐나다·유럽중앙은행(ECB)과 9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기간은 30일로 짧았다.
세계금융위기(2007~2008년) 당시 Fed는 ECB·스위스·한국(300억 달러) 등 14개국 중앙은행과 양자 간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체결액만 5800억 달러에 달했다. 코로나19확산세가 거세던 2020년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9개국과 한시적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그해 3월 Fed가 한국은행과 맺은 통화스와프 한도는 600억 달러(약 77조원)였다.
외환 부족 사태가 발생했을 때 기본 안전판은 외환보유액이다. 적금처럼 꾸준히 쌓은 방파제인 셈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외환보유액은 4493억 달러(약 571조원)다. 달러 강세로 달러로 표시한 다른 통화 가치가 떨어지며 전달보다 85억1000만 달러(약 11조원) 줄었다.
통화스와프는 통화 당국 입장에는 보험 성격이 강하다. 외환이 부족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만큼, 외환보유액 감소를 막을 수 있다. 시장에 심리적 안정감도 준다. 2020년 3월 19일 달러당 1285.7원이던 원화값은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후인 3월 20일 39.2원 상승(1246.5원)했다. 시장에서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최근 한미 통화스와프에 대한 이야기가 고개를 드는 것도 이 연장선에서다. 원화 값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 거래일보다 6.4원 하락한 달러당 1272.7원에 거래를 마쳤다(환율 상승). 지난달 28일(1272.5원) 기록한 연저점을 다시 깼다. 세계금융위기 수준으로 떨어졌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은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민생 안정이라는 최우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환·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한미 간 통화스와프 체결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입장에서 한미 통화스와프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문가들도 “체결만 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현실화 가능성이다. 한국은 현재 캐나다와 스위스, 중국 등과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기축통화국과 맺은 통화스와프는 없다. 반면 미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맺은 나라는 유럽연합(EU)·일본·영국·스위스·캐나다 5개국뿐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9일 인사청문회에서 “미국과 상설 스와프를 맺은 국가는 세계의 금융허브”라며 “한국이 국제금융시장 허브가 안 될 경우 (한국이) 원한다고 (스와프 체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세계금융위기나 코로나19 때처럼 일시적 통화스와프 체결도 여의치 않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미국의) 통화스와프는 전 세계가 달러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판단이 선행돼야 하는 데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다”며 “미국이 통화스와프를 체결한다면 경제·금융 논리가 아닌 달러의 무기화 등 정치적 결정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달러 유동성이 메말라 세계 경제는 물론 자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때만 통화스와프 문을 열어왔다. 2020년 3월 통화스와프 체결도 신흥국이 달러 확보를 위해 미국 국채를 한 번에 내다 팔아 국채 가격이 급락(금리 상승)해 미국 금융시장으로 불안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한 목적이 컸다.
미국에 통화스와프 체결의 필요성을 설득할 논리도 마땅치 않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이 어느 정도 지나간 상황에서 최근 금융시장의 불안은 Fed의 통화 정책 정상화에 기인한 것인 만큼, 통화정책을 움직일 때마다 통화스와프를 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만큼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스와프가 원화 약세를 잡을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올해 초 96.21에서 지난 6일 103.66까지 치솟았다. 달러인덱스로만 봐도 미국과 상시 통화스와프를 맺은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는 연초보다 평균 7.8% 하락했다. 같은 기간 원화가치의 하락 폭(6.7%)보다 크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현재 원화 가치를 움직이는 건 경상수지와 미국의 긴축기조”라며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더라도 전 세계적인 강달러 기조 속에 원화가치 하락 추세를 막을 수 없는 만큼 통화스와프의 실효성은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신중한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한미 통화스와프를) 여러 대응책 중 하나로 검토는 하겠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전혀 없다”며 "되면 좋지만,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국 경제가 문제 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세계적인 달러화 경색으로 미국 경제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을 (통화스와프 체결의) 판단 근거로 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통화스와프 카드를 좀 더 신중히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Fed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김진일 고려대(경제학) 교수는 “통화스와프는 자주 쓸 수 없는 카드인 만큼, 지금 그 카드를 뽑아야 할 때인지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며 “통화스와프를 맺었는데 환율 변동성 등이 이어져 시장 참여자 사이에 신뢰가 깨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경제학) 교수도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맺는 건 무조건 환영할 일이지만 추진 방식은 신중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는 게 좋다”며 “통화 당국이 아닌 한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통화스와프를 정상회담 의제로 놓는다는 건 한국 경제에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불필요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효성·손해용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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