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내부엔 감사위원회…내부 회계통제시스템도 운영
내부조직 통해 본부 부서 여러 차례 검사도 진행했지만
10년간 횡령 몰라…외부 회계법인도 연속 '적정 의견'
회계 전문가 "외부감사서도 未포착, 상식 밖의 일"
금감원, 회계법인 조사…경찰, 횡령직원 동생도 체포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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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우리은행 본점에서 발생한 수백억 원대 횡령사건이 뒤늦게 드러난 것을 두고 장기간 내·외부 회계 관리 시스템이 사실상 마비됐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자금통제가 생명인 제1금융권에서 이 같은 사건이 터졌다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특히 지난 10년간의 외부감사에서조차 횡령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건 "정말 미스터리"라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온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이번 횡령 추정액은 614억 5214만여 원(잠정)으로, 돈이 빠져나간 시점은 2012년 10월 12일, 2015년 9월 25일, 2018년 6월 11일 세 차례다. 횡령금 대부분은 옛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려던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으로부터 계약 불발을 이유로 몰수한 계약보증금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주간사 은행이었던 우리은행이 이 돈을 일종의 특별계좌에 보관 중이었는데, 횡령 당사자로 지목돼 경찰에 긴급체포된 차장급 직원A씨는 본점 기업개선부(본부 부서)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해당 계좌를 관리한 실무자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은행이 내부감사를 통해 횡령사실을 인지해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시점은 지난 27일이다. 돈이 빠져나간 지 10년가량 지난 시점에서야 거액의 내부 횡령 정황을 포착한 셈으로, 긴 시간 회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진 건 맞느냐는 물음표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4대 시중은행으로 꼽히는 우리은행은 관리 자금에 구멍이 날 경우 인지할 수 있는 내·외부 통제 시스템을 겹겹이 갖추고 있었지만, 최근 10년 치 사업보고서상 기재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금융회사의 경우 내부통제시스템을 일반 회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 높게 적용해왔다. 1금융권에서 이런 사고가 터졌다는 건 그야말로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우리은행의 2012~2021년도 사업보고서를 보면, 일단 우리은행 내부에는 감사위원회가 설치돼 매해 내부통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평가하고, 내부 감사 결과 보고서도 작성해왔다. 감사위원회의 직무를 보조하기 위한 '검사실'도 두고 있는데, 그 역할은 "영업점(국외영업점 포함) 및 본부 부서를 대상으로 업무 전반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본부장부터 일반 행원까지 수십명으로 구성된 이 검사실에선 마지막으로 돈이 빠져나갔다고 알려진 2018년에도 본부 부서에 대한 종합·부문 검사를 60차례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2019년에도 47차례, 2020년엔 36차례씩 본부 부서 검사를 실시했지만 횡령 정황은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회계정보의 작성과 공시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회계통제시스템인 '내부회계관리제도'도 법에 따라 운영해왔다. 그러나 보고서상 이 제도 운영에 문제가 발견됐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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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의아한 대목은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의 감사에서조차 우리은행은 연속 '적정 의견'을 받았다는 점이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은행 회계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도, 2020년과 2021년 외부감사인이었던 삼일회계법인도 일관되게 같은 적정 의견을 냈다. 뿐만 아니라 이들 회계법인은 같은 기간 우리은행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실태에 대해서도 별 다른 문제점이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사업보고서에 적시했다. 자금 구멍이 600억 원대로 커졌다고 알려진 2018년부터도 "경영자의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실태보고서에 대한 검토 결과, 경영자의 운영실태보고 내용이 중요성의 관점에서 내부회계관리제도 모범규준의 규정에 따라 작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게 하는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사업보고서상에 반복됐다.
한 회계학 박사는 "기업 매각 관련 계약금이 관리되던 계좌라면 수시로 입출금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어서 사각지대에 놓였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알려진 대로 600억 원대 현금이 빠져나갔다면 우리은행이 다루는 전체 자금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았다고 할지라도, 이 정도 잔액이 비었는데 감사의견 적정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이라며 "만약 분식회계가 있었다면 적발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감사인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도 29일 정확한 경위 파악을 위해 일단 안진회계법인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사 내용에 따라 감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은보 금감원장도 같은 날 "회계법인은 감사를 할 때 시재(보유 현금)가 확실히 존재하는지, 그리고 재고 자산으로 존재하는지 꼭 봐야 한다"며 "어떤 연유로 조사가 잘 안 됐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금융당국에서 해야 할 일은 금융사들의 내부 통제 제도에 어떠한 허점이 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조사하고 확인해 개선하는 것"이라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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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 책임론도 제기된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진행했으면서도 이번 사건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28일 뒤늦게 수시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에 대한 관리·감독은 금감원의 역할이지만, 인력과 검사 기간이 한정돼 있는 만큼 중점을 두고 보고 있는 건 내부통제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 있는지와 은행의 건전성 등"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횡령 혐의를 받는 A씨에 이어 A씨의 친동생도 같은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동생은 우리은행 직원은 아니지만, 경찰은 A씨와 공모해 돈을 빼돌렸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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