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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물가와 GDP

한은 수장 취임 첫날…물가보다 성장을 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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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1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이창용 신임 총재가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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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생각해 보았을 때 한국은행의 책임이 통화정책의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

21일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사를 통해 전통적인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과 작별을 고하고 우리 경제 전반에 걸친 문제점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를 한은의 미래로 제안했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27대 한은 총재 취임식에서 "한은의 가장 큰 임무가 거시경제 안정을 도모해 국민 신뢰를 얻는 것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면서도 "통화·금융정책을 넘어 당면한 문제를 연구해 우리 경제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한은 역할의 확대를 주문한 것은 한국 경제가 '대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과 더불어 세계화의 후퇴 흐름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뉴노멀(새 표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신기술 확보 경쟁, 지정학적 경제 블록화 등으로 국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정치·경제·안보 등 여러 이슈가 연계되면서 국제 정세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코로나19 위기 이후 이러한 뉴노멀 전환 과정의 도전을 이겨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지, 아니면 고령화와 생산성 저하 추세가 이어지면서 장기 저성장(secular stagnation) 국면으로 빠져들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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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구조개혁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날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각을 나타냈다. 그는 "지나친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켜 우리의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킬 것이기에 이에 대한 해결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가계·정부부채와 관련해서는 "부채의 지속적인 확대가 자칫 거품 붕괴로 이어질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우리는 과거 경험으로부터 알고 있다"면서 "거시경제 안정을 추구하는 한은이 부채 문제 연착륙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정책의 프레임 전환을 제안했다. 그는 "과거와 같이 정부가 산업정책을 짜고 모두가 밤새워 일한다고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이제는 민간 주도로 보다 창의적이고 질적인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취임사의 대부분을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해결을 강조하는 내용에 할애했다. "한은 본연의 역할은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인데 왜 이렇게 큰 거시적 담론을 이야기하는지 의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직접 밝힐 만큼 과거 한은 총재와는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실제로 취임사에는 '성장'이라는 단어가 7번 나온 반면 '금융(5번)' '물가(3번)'와 같이 통화정책 관련 용어는 상대적으로 덜 언급됐다. 심지어 '금리' '통화량' '유동성' 등 단어는 취임사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한은의 체질 개선을 위한 변화(4번), 소통(4번), 전문성(3번)도 수차례 언급됐다.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미국의 예상보다 빠른 통화정책 정상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중국 경기 둔화 가능성 등이 통화정책의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며 "성장과 물가 간 상충관계가 통화정책을 더욱 제약하는 상황인 만큼 정교하게 균형을 잡아 정책을 운용할 때"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한은이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로 도약하기 위해 전문성 강화와 외부와의 소통 확대, 국제 이슈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한은사(韓銀寺)'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폐쇄적이고 소극적인 한은의 조직문화를 탈바꿈시키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전문성 강화를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이 총재가 국제통화기금(IMF) 재직 시절 어떤 분야든 내부에서 전문가를 찾아 전화 한 통으로 궁금한 사항을 해결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원 콜 어웨이(one call away), 즉 전화 한 통이면 몇 권의 책을 찾아 읽는 것보다 더 빠르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면서 "개개인이 전문성을 공유해 IMF 조직 자체 전문성이 높아지는 것을 보았다"고 밝혔다.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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