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8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반발하며 사의를 밝힌 김오수 검찰총장에게 “국민이 검찰의 수사 능력을 신뢰하는 것은 맞지만, 수사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여환섭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긴급 전국고검장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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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부터 청와대에서 김 총장과 70분가량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강제수사와 기소는 국가가 갖는 가장 강력한 권한이고, 따라서 피해자나 피의자가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검찰 수사가 항상 공정했다고 말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법제화와 제도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그간 검수완박에 대해 “국회의 시간”이라는 것 외에 별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이날 ‘검찰 수사의 공정성 의심’이라는 취지의 발언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에 대해 공감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여권 고위 당국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사·기소 분리는 문 대통령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문 대통령이 이날 김 총장 면담을 수용하면서 검찰의 주장을 들어주는 모습을 취했지만, 결국은 검찰이 여태 스스로 개혁하지 않았으니 검수완박과 같은 외부 충격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날 면담에서 “개혁은 검경의 입장을 떠나 국민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국회의 입법도 그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민주당 역시 지나친 일방통행식 법안 처리는 자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다만 지난해 검수완박 입법 논의 때 ‘속도 조절’과 같은 명확한 발언은 내놓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김 총장이 검찰 내부에 대한 설득은 물론 민주당에 대한 설득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는 취지의 당부를 내놓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우선 사의를 표한 김 총장에 대해 신뢰를 표한 뒤 “검찰총장은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이 없으니 임기를 지키고 역할을 다해 달라”면서 사표를 반려하겠다는 뜻을 거듭 확인했다. 그러면서 “이럴 때일수록 총장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검찰 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거부권 언급 없이 김오수에 “임기 지켜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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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김 총장은 문 대통령에게 법안 내용에 대한 우려를 설명하고, 또 나아가 대안도 제시했다고 박경미 대변인이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김 총장은 충분히 의견을 개진했고 문 대통령은 경청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총장도 문 대통령과 면담한 뒤 오후 7시쯤 대검 청사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에게) 검찰 구성원을 대표해 검수완박 법안의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상세하고 충분하게 말씀을 드렸다”며 “검찰 수사의 중립성, 공정성 확보 방안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앞서 김 총장은 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면서 “(검수완박) 법률안 공포와 거부권은 대통령의 권한이라 적절히 판단하실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면담에서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총장은 “구체적으로 제가 말씀드린 내용,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말씀드리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한 검사장급 간부는 “청와대 브리핑 내용만 보면 김 총장에게 임기를 완수하란 메시지 외엔 민주당의 강행처리 시도나 김 총장의 거부권 행사 건의에 대한 내용은 빠졌다”며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날 면담은 전날 김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하루 만에 이뤄졌다. 여권의 고위 인사는 “검찰의 집단 반발 속에서 법안을 강행처리하는 것은 물론, 김 총장의 조기 사퇴 자체도 문 대통령에게는 부담”이라며 “특히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당선인에게 정권을 이양해야 한다는 점 역시 문 대통령이 김 총장의 사퇴를 일단 막아야 하는 배경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김 총장은 임기 2년 중 아직 13개월을 남겨놓고 있다.
이날 면담에서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을 두고 국민의힘은 “대통령으로서 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부추기는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검찰총장을 임명한 이는 다름 아닌 문 대통령 아닌가”라면서 “그런 총장이 이끄는 검찰이 잘못했다면 그 책임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도 있을 것이다. 무책임한 자기부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검찰을 만들겠다는 민주당의 ‘검수완박’ 앞에서 ‘검찰의 역할을 다해 달라’는 어불성설을 듣기 위해 김 총장이 직을 건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대검에서는 오전 9시30분부터 긴급 고검장 회의가 열렸다. 회의엔 이성윤 서울고검장·김관정 수원고검장·여환섭 대전고검장·조종태 광주고검장·권순범 대구고검장·조재연 부산고검장 등 전국 고검장 6명이 전원 참석했다.
여환섭 대전고검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국민의 권익과 관련된 기본법을 개정하는 데 있어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개최하지 아니하고 학자나 시민단체, 실무자인 변호사단체의 의견을 무시한 채 2주 만에 추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민주당을 향해 “냉정한 이성을 되찾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조종태 광주고검장도 “법안이 시행되면 범죄자는 두 발 뻗고 자겠지만, 피해자는 눈물과 한숨으로 잠 못 이루게 될 것”이라며 “법안을 발의하신 분들이 설마 이런 세상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하고, 믿고 있다”고 했다.
다만 문 대통령과 김 총장 면담 이후 오후 8시가 넘어 나온 고검장 회의 결론은 오전보다 누그러졌다. 고검장들은 “앞으로 총장을 중심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해 법안의 문제점을 충분히 설명드리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했다”는 입장문을 냈다.
강태화·정용환·안대훈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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