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모습. 500여 명이 죽고, 900여 명이 다쳤다. 현 백화점 부지엔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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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복합 아파트 들어선 옛 삼풍백화점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동생을 잃은 김문수(60)씨가 ‘삼풍참사 위령탑’ 앞에 섰다. 27살 나이에 숨진 동생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다. 김씨는 “마음 한 켠에 무거운 죄책감을 갖고 산다”고 했다. 숨진 동생이 김씨 권유로 삼풍백화점 내 안경점에서 일을 시작해서다.
김씨는 상품백화점 참사 후 추모공간 건립을 추진했지만 곧바로 좌절했다. 무너진 삼풍백화점 터에 세우려던 위령비가 주변 주민의 반발에 부딪힌 탓이다. 결국 위령탑은 사고 현장에서 6㎞가량 떨어진 양재시민의 숲까지 가게 됐다. 위령비는 유격백마부대 충혼탑·대한항공기 버마상공 희생자 위령탑 등과 함께 양재시민의 숲에서도 외진 ‘1구역’에 쓸쓸히 서 있다. 스포츠·문화 시설로 조성된 2구역에 비해 인적이 드물어 이곳에 위령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
참사의 교훈을 기억해야할 사고 현장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현재 옛 상품백화점 부지엔 현재 700세대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502명이 숨진 참사의 기억도 아파트 건설에 묻혔다. 김씨는 “삼풍 붕괴가 27년 전이어서 그때 자식을 잃은 부모도 이젠 많이 세상을 떠나셨다”며 “우리 동생의 억울한 죽음은 언제까지 기억될 수 있을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12일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에 위치한 삼풍참사 위령비. 위령비가 있는 1구역은 벚꽃을 보러 온 인파로 북적이는 2구역과 달리 한적했다. 이수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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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세워진 위령탑이지만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탑 곳곳의 틈이 벌어지고 바닥재도 부서진 채 방치된 상태다. 공원 측과 유족회는 보수업무를 누가 담당할 것인가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손영수 유족회 회장은 “원칙적으로 위령비 공사 발주와 사후관리가 서울시 공원녹지 관리사무소 소관으로 돼 있다”며 “민원을 넣어도 (공원 측에선) ‘유족회가 관리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원 관계자는 “공원은 제초·수목 작업 관련된 것만 담당하고 기념비 파손 문제는 유족회가 해결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예산 지원이 가능한지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삼풍참사 위령비 바닥 부분 타일이 자리에서 이탈해 있다. [사진 유족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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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추모공간 ‘기피’ 현상
추모공간에 대한 홀대는 삼품백화점 참사 만이 아니다. 국내 대부분의 대형참사 추모공간은 혐오시설로까지 여겨지는 분위기다. 모두들 참사가 발생하면 ‘잊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현장은 말끔히 사라진다. “집값 떨어진다”, “장사 안된다” 등의 힐난에 하나 둘씩 기억에서도 지워진다.
올해 8주기를 맞은 세월호 추모 문구도 '리멤버(Remember)'다. 노란색 추모 리본에도 '잊지 않을게' 혹은 '기억하겠습니다'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하지만 참사 8년째인 올해까지 세월호 추모관이나 추모시설 조성은 지지부진한 상태여서 기존 대형참사처럼 잊혀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사건. 화재로 유치원생 19명 등 23명이 숨졌지만 현장엔 추모비 하나 없다. 유족들은 수십㎞ 떨어진 서울시 송파안전체험교육관에서 매년 추모 행사를 연다.
화성시는 2017년 18주기 추모제 때 씨랜드 참사 부지에 희생자 추모비와 추모공간(330㎡)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궁평종합관광지 개발절차가 미뤄지면서 완공날짜는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다시 2024년으로 미뤄졌다. 추모부지는 관광지 안에 포함돼 있다.
2017년 씨랜드 참사 현장에 놓인 꽃다발.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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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주차장 쓰인 씨랜드 참사부지
그 사이 참사 현장 인근엔 대형 카페가 들어섰다. 사고 당시 씨랜드를 운영한 관계자가 운영하는 시설이다. 이들이 불법 건축물을 짓고 무단으로 참사 현장을 주차장으로 사용한 사실이 한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화성시 씨랜드화재참사 추모공원·추모비를 만들고 주변 카페의 불법행위 조사를 촉구한다”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서철모 화성시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불법사항을 확인해 원상복구명령을 내렸다”며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사법기관에 고발조치하겠다. (또다른) 불법사항이 없는지 지속적으로 관리감독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철거돼 서울시의회 앞에 새롭게 마련된 세월호 기억공간. [사진 김명식 건축가] |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2019년 광화문 광장에 만들어진 ‘세월호 기억공간’ 역시 존폐 위기에 놓였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광화문광장 조성공사’를 이유로 기억공간 철거를 요구했다. 유가족은 지난해 11월 시설물을 서울시의회 앞으로 이전했으나 오는 7월 공사 완료 후 기억공간을 광화문 광장에 복원할 것을 두고는 마찰을 빚고 있다.
장동원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처 팀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민주주의의 촛불이 올라왔던 역사적 공간이었던 만큼 기억공간을 어떻게 복원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희생자의 유족들이 9·11테러 추모 공간 '그라운드 제로'에서 서로를 안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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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며든 해외의 ‘추모 공간’
참사의 기억을 지우려는 의식은 해외 선진국들과도 대비된다. 2만80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9·11테러 추모 공간은 미국 시민의 일상에 자리하고 있다. 참사 현장인 세계무역센터 부지는 고층 건물이 빽빽한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에 건물을 올리지 않고 보존했다. 분수 둘레에 빼곡히 적힌 이름을 보며 시민들은 그날의 아픔을 기억한다.
베를린의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도 국민적인 관심 속에 관리·운영되고 있다. 지상엔 무명의 묘비가 세워진 일상 공원을 만들고 지하엔 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관련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4·16 생명안전공원’. 세월호 304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공간이지만 부지는 텅 비었다. 붉은색 흙더미 한가운데엔 노란 리본을 꼬리에 단 파란색 고래가 그려진 안내판과 노란색 나무벤치가 덩그러니 들어서 있었다. ‘별이 된 너를 그리워하며’.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등이 참여한 4·16 재단이 설치한 구조물이다. “텅 빈 부지가 안타까워 설치한 것”이라고 했다.
4·16 생명안전공원은 ‘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정부 등이 추진하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시설이다. 화랑유원지 남동쪽 2만3000㎡ 부지에 추모기념관, 추모비 등이 들어선다. 화랑유원지엔 세월호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합동분향소가 운영됐었다. 453억 원을 들여 2024년 준공하는 게 목표다.
세월호 희생자를 기릴 경기도 안산 생명안전공원 부지모습. 현재 텅 비어 있다. 안산=최모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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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서 우여곡절, 세월호 추모시설
그동안 생명안전공원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위치를 놓고 주민 반발이 이어졌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유원지에 왜 추모시설을 만드느냐”는 주장이다. ‘찬성’과 ‘반대’ 의견이 맞물리며 주민간 갈등으로까지 번졌다.
안산시는 “세월호 상처를 치유·기억하는 공간이자, 시민들의 휴식처가 될 명품공원을 만들겠다”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추모공원에서 ‘생명안전공원’으로 명패도 바꿨다. 그러나 현재도 가끔 시청 등으로 “화랑유원지에 추모시설이 왜 들어서야 하느냐”는 항의 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당초 올해 4월쯤 개장 예정이던 전남 진도 국민해양안전관의 실제 개관은 또 해를 넘길 형국이다. 국비 270억 원 들여 팽목항 인근에 들어서는 시설은 세월호 추모공간과 재난안전교육장 등을 2016년부터 조성해왔다. 하지만 기재부가 1년 운영비 25억 원 중 10억 원을 진도군에서 부담하라고 해 갈등을 빚고 있다. “더이상 팽목항이 슬픔의 공간이 되지 않길 바란다”는 일부 진도 주민 반감도 넘어야할 과제다.
전문가들은 대형참사의 추모공간은 시민들의 일상공간 속에서 기억할 수 있는 곳이 돼야한다고 조언한다.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의 저자 김명식 건축가는 추모공간에 대해 “희생자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을 넘어 국가와 기업,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적 책임이 있는 모두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경고의 의미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추모공간이 기일에 맞춰 연중 한 번 의식으로 끝나는 제례의 공간이 아닌 일상에서 마주하고 기억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수민·김민욱 기자, 안산·화성=최모란 기자 lee.sumi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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