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9월 성주 사드 기지를 비행하는 육군 수리온 헬기. 중앙 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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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사드 ‘3불1한’
지난 2017년 11월 24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직전 있었던 한‧중 외교장관회담과 관련해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가졌다. 하지만 주된 소재는 회담 결과가 아니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관련한 ‘3불(不)1한(限)’이었다.
앞서 한‧중은 2017년 10월31일 사드 갈등을 ‘봉인’하고 중국의 사드 보복 해제 등을 통해 교류·협력 복원을 지향하기로 했다. 한국은 3불(▶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편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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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현재 사드’까지 건드린 中
그런데 중국은 이에 더해 난데없이 1한을 요구하고 나왔다. 이미 배치된 사드의 운용도 제한하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기자들의 관심은 봉인했다는 사드 갈등이 봉인되지 않은 데 쏠렸다. 다음은 당시 브리핑 질의응답의 일부 발췌다.
Q : 봉인이라는 것은 현 상태를 인정하고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인데, 1한이라는 것은 현재 배치된 사드에 대해 중국이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뜻 아닌가요? 향후 이를 중국이 계속 제기하면 정부는 어떻게 할 건가요?
A : “가정을 전제로 한 질문에 답하기는 어려운데, ‘양국은 국방 채널을 통해 중국의 우려에 대해 소통하기로 했다’는 10월31일 한‧중 간 협의 결과에 충실해서 해석해주셨으면 합니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이를 토대로 대화가 있었습니다.”
Q : 그럼 ‘이미 배치된 사드의 철수는 없다’고 해도 됩니까?
A :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니고….”
지난 2017년 11월 22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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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중국 외교부가 그들의 최종 목표는 사드 철수라고 했는데, 그러면 당국자께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북핵의 위협이 해소되지 않는 한 사드는 철수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A :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것이고, 논리적 귀결로 ‘위협이 없어진다면’ 이런 (가정적)이야기는 해왔죠.”
Q : 그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계속되는 한 사드 철수는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인 것이 맞죠?
A : “….”
Q : 중국이 뭐라고 주장하는지와 상관없이 정부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겁니다.
A : “….”
Q : 아니, 반대의 이야기는 하면서 왜 그 이야기는 못 하죠?
A : “논리적으로, 어의적으로는 (그렇게)해석될 수 있겠죠.”
Q : 아니, 우리의 입장이잖아요. 북핵 때문이라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A : “그러고 있지 않습니까.”
Q : 그러면 그 위협이 제거되기 전엔 철수하지 못 한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A : “그렇게 숨을 못 돌릴 정도로 (질문)하실 것은 없고. 그런 해석을 할 수 있겠습니다.”
38분 간 이어진 당시 브리핑은 시종일관 이런 식이었다. 당국자는 기자들의 공세적 질문에 방어하기 바빴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제거되지 않는 한 현존하는 사드도 철수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입장도 멱살이라도 잡히듯 겨우겨우 끌려가다 마지못해 ‘인정’하는 식이었다.
지난 2017년 9월 경북 성주군 사드 기지에 사드 발사대가 추가 배치돼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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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불은 약속이나 합의가 아니라 기존 정부의 입장을 다시 표명한 것뿐이라는 설명에 기자들이 “기존 입장 표명에 지나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다른 정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이냐”고 묻자, 당국자는 “그것은…. 제가 지금 한‧중 외교장관회담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러 온 것이니까, 그에 충실한 브리핑을 하겠다”며 아예 대놓고 답을 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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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 다시 불거진 ‘3불1한’
지난 4일 중국 정부가 그간 한국 정부에 사드에 대해 3불1한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원일희 수석부대변인)고 나서며 다시 논란이 불거졌지만,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위의 브리핑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부터 이미 3불1한은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3불이 미래에 대한 담보라면, 1한은 이미 배치된 현재의 사드까지 건드리는 요구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양국은 사드 문제를 ‘단계적 처리’하기로 했다면서도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놨다.
중국은 처음부터 공공연히 최종 목표가 사드의 철거라고 밝혔다. 영어로도 ‘phased settlement’라고 했다.(2020년 10월 중국 외교부 대변인) ‘최종 단계’가 철거라면, 이미 배치된 사드의 운용 제한은 ‘중간 단계’로서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원일희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부대변인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현안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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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은 처음부터 이를 ‘현 단계에서(in the current stage)’라고 설명했다. 지금 상태를 일단 인정하고, 이를 전제로 해결책을 협의한다는 취지다. ‘봉인’이라는 청와대발 표현도 그래서 나왔다. 당시 양측이 합의한 내용은 10‧31 협의결과로 발표한 문서밖에 없으며, 1한은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게 그때나 지금이나 일관된 정부의 입장이다.
미안하지만, 못 믿겠다. 이런 정부 입장이 사실이라면, 중국은 왜 사드 관련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무슨 보따리라도 맡겨놓은 사람처럼 기세등등하며 억지 주장을 펼치는가. 그게 중국의 기만이라면 정부는 왜 공식적으로 강하게 항의하지 않는가. 한국의 3불 입장은 유지되는데, 중국이 약속한 한한령 해제는 왜 아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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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발표가 전부? 석연치 않은 5년
게다가 이미 배치된 사드 포대는 정부의 환경영향평가가 지연되며 아직도 임시 배치 상태에 머물고 있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임기 5년 내내 1한을 알아서 유지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7일 주한미군 평택기지(캠프 험프리스)를 방문,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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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윤석열 정부의 대중 정책 방향 설정에서 중요한 것은 2017년 10월 31일 있었던 일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다. 당시 발표된 내용 외에 어떤 협의가 오갔고, 중국은 무엇 때문에 아직까지 ‘사드 갑질’을 계속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잘했다면 ‘백서’를, 잘못이 있다면 ‘흑서’를 만들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렇다고 문 정부가 초기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어 한·일 간 위안부 합의를 공개적으로 난도질하고 30년 동안 기밀로 묶여야 하는 외교 협의 내용까지 만천하에 까발린 전철을 밟으라는 게 아니다. 새 정부의 제대로 된 대중 정책 설정 및 운용을 위해 정부 내부적으로 의혹이 남은 부분을 명명백백히 규명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만 알고, 윤 정부는 모르는 내용이 있는 상태에서 한‧중관계의 출발선을 끊는 건 핸디캡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힐튼 호텔에서 '신정부 출범 이후 한중관계: 상호존중과 협력,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한중 전문가 대화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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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금기어’라는 中 대사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7일 한‧중 전문가 대화에서 “사드란 두 글자는 중‧한 관계의 금기어가 됐고, 양국은 다시는 그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언뜻 듣기엔 사드 갈등 같은 관계 악화 상황은 다시 없어야 한다는 취지 같지만, 사실 뼈가 있는 말이다.
이는 이미 6년째 임시 배치 상태에서 완전한 가동이 되지 않는 현 사드 포대의 정식 배치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공약한 사드 추가 배치 같은 이야기는 중국에 아예 꺼내지 말라는 뜻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누가 동의했다고 마음대로 금기어 설정인가. 윤 정부가 2017년 10월 31일로 시계를 되돌려 진실을 파악해야 하는 이유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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