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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이게 다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 때문이라고? [뉴스 쉽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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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디그(dig)'팀이 연재하는 '뉴스 쉽게보기'는 술술 읽히는 뉴스를 지향합니다. 복잡한 이슈는 정리하고, 어려운 정보는 풀어서 쉽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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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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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중견 건설사 호반건설이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 13.97%를 대량으로 취득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한진칼 2대주주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KCGI로부터 한진칼 주식 940만주를 사들이기로 계약한 건데요, 오는 4일에 거래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호반건설은 이번 거래로 KCGI가 보유한 나머지 주식과 신주인수권에 대해서도 우선적으로 사들일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고, 만약 이 권리를 행사하면 지분율이 17.35%에 달해 한진칼의 2대 주주에 등극합니다.

그런데 이번 거래 소식이 전해진 후 언론과 재계의 관심은 '호반건설이 누구 편에 설 것인가'에 쏟아지고 있어요. 대한항공을 보유한 한진칼의 경영권을 두고 오랜 기간 경쟁이 벌어졌고, 다양한 사건들도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땅콩과 물컵에서 시작된 이야기


이야기는 대한항공 재벌가 자녀들이 일으킨 논란에서 시작됐습니다. 지난 2014년 뉴스를 도배했던 '땅콩 회항'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 비행기에서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가져다준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활주로로 이동 중이던 항공기를 되돌린 일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샀습니다.

2018년엔 '물컵 갑질'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이번엔 조현민 당시 전무가 광고 회사 직원들과 회의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죠. 한 직원이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했다며 소리를 지르고 물컵을 던져 논란이 됐습니다. 여기에 조현아 전 부사장이 대한항공 여객기를 이용해 해외명품을 밀수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했죠.

'행동주의 사모펀드'의 등장



논란이 연이어 일어나자 '회사 자체를 갈아엎어야 한다' '경영진을 바꿔야 주가도 오를 거다'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주장에 힘입어 등장한 사모펀드 운용사가 KCGI였습니다. KCGI는 대한항공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경영권을 확보해 대한항공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회사였고, 확보한 한진칼 지분도 9%밖에 안 됐기 때문이죠. 하지만 KCGI는 스스로를 '행동주의 사모펀드'라고 소개하며 대한항공을 바꿀 적임자라고 주장했습니다.

행동주의 사모펀드는 기업 경영 상황을 개선시켜 보겠다는 '명분'을 갖고 투자하는 펀드인데요, 명분을 챙기면서 기업 가치를 높여 돈도 벌기 위한 회사인 거죠. KCGI는 대한항공이 잘못된 경영과 조양호 회장 자녀들의 구설 때문에 기업 가치까지 저평가당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벌가와 맞붙은 KCGI


그럴듯한 명분은 있었지만 KCGI는 한진칼 지분을 9%밖에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회장이었던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가족들이 보유한 지분을 더하면 29%쯤 됐으니 상대가 안됐습니다. 그래서 KCGI는 명분을 앞세워 대한항공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양호 회장 가족들이 맨날 사고만 치고 경영은 뒷전이니 대한항공 주가가 이 모양이라는 논리였습니다. 당시 개인투자자들의 지분을 다 더하면 50%쯤 됐으니 이들을 설득하면 대한항공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실제 KCGI는 주주들의 호응을 얻으며 2019년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고(故)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저지에 성공하는 등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국내 재벌 총수가 주총 표결에서 패배해 자리에서 물러난 첫 사례였습니다.

다만 며칠 뒤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에서는 KCGI가 표 대결에서 패배했는데요, KCGI와 한진그룹 일가가 한방씩 주고받은 모양새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KCGI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양측의 지지부진한 대결은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예상치 못한 남매간 경영권 분쟁


그런데 2019년 4월, 양측의 대결이 갑자기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습니다. 고(故) 조양호 회장이 갑자기 별세했기 때문입니다. 후계자로는 둘째인 조원태 회장이 낙점됐습니다. 원래부터 유력한 후보로 꼽혀왔고 첫째, 셋째와 달리 별다른 구설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원태 회장이 대한항공을 이끌게 되자 첫째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이렇게 남매 간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습니다.

지분율에서 열세였던 조현아 전 부사장은 결국 경영권을 두고 경쟁하기 위해 KCGI와 손을 잡았습니다. 말하자면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표현이 딱 맞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물론 이때 첫째와 손을 잡은 KCGI에 대한 비판도 나왔습니다. 대한항공 재벌가 가족들이 문제라는 명분을 앞세워 '행동주의'를 표방해 놓고선 결국 그중 하나와 손을 잡은 거니까요.

이후 조 전 부사장은 자금력을 보유한 중견 건설사인 반도건설까지 우군으로 확보했습니다. 이렇게 이른바 '3자 연합'이 결성됐습니다. 그동안 KCGI도 꾸준히 한진칼 지분을 사들였기 때문에 이들의 지분을 다 더하면 37%쯤 됐는데요, 충분히 경쟁을 해볼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2년 싸움 끝낸 회심의 카드 '아시아나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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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김포공항 활주로에 서 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비행기.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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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GI가 등장한 지 꼭 2년 만인 2020년 11월, 조원태 회장이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바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내 2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은 당시 경영난을 겪고 있었는데,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하기로 한 거죠.

앞서 아시아나항공에 돈을 빌려줬던 산업은행은 두 팔 벌려 환영하고 나섰습니다. 조원태 회장을 도와주겠다며 대한항공과 한진칼에도 돈을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한진칼 지분을 갖게 된 산업은행까지 편을 들어주면서 조원태 회장에게 우호적인 지분이 42%까지 늘어나게 됐습니다. 조 회장과 3자 연합의 대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카드가 등장하면서 조 회장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돈은 확실히 챙겨 떠난 행동주의 펀드


더 이상 대한항공에서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한 건지 결국 KCGI는 한진칼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최근 호반건설에게 사실상 모든 지분을 파는 계약을 맺은 거죠. KCGI가 대한항공의 체질을 개선 시키겠다는 당초 목표를 모두 이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한진칼 주가가 많이 올라서 수익은 쏠쏠하게 챙기게 됐습니다. KCGI는 지분을 매각하면 투자금의 약 2배를 회수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CGI 관계자는 "지난 3년반 동안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및 재무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힘써 왔다"며 "오너 일가의 일탈과 독단적인 경영행태에서 벗어나 여러 주주들이 경영진에 대한 건전한 견제와 균형 역할을 하는 의사결정 체제가 갖춰졌다"고 밝혔습니다.

꺼지지 않은 경영권 다툼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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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KCGI의 주식을 매입한 호반건설이 등장하면서 경영권 다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호반건설이 아직 누구 편에 선다는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시장에선 이 회사가 언제든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노릴 수 있다는 예상을 내놓고 있습니다.

중견 건설사인 호반건설이 넉넉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항공산업 진출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실제 호반건설은 지난 2015년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인 금호산업 인수전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전적이 호반건설의 진영 선택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입니다. 누구 편에 서느냐에 따라 약 1년 반 전에 끝났다고 생각했던 '대한항공 경영권 다툼'이 다시 시작될 수도 있으니까요. 땅콩과 물컵에서 시작된 기나긴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집니다.

<뉴미디어팀 디그(dig)>

[박재영 기자·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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