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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초유의 현직 당대표 징계

“이준석 대표님, 같이 휠체어 타볼래요? 절호의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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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다음주의 질문

한겨레

지난 28일 오전 서울 경복궁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관련 지하철 시위 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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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어여삐 여기는 “4호선 서민주거지역들”에 오래 살았다. 매일 같은 시각 등하교나 출퇴근을 하다 보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발이 먼저 움직이는 익숙한 곳들이다. 자주 다니던 곳 중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곳이 있었는데, 고등학생 때 주로 다니던 서울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열차를 타고 내릴 때였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넓어 늘 발이 빠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과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건 지난해 9월 <경향신문> 기사를 보고 나서였다. 서울교통공사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04년 이전 공사된 서울지하철 268개역 승강장 1만8856곳 중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가장 넓은 곳은 성신여대입구역 상선 3-3으로, 무려 28㎝였다. 이 역의 상선 승강장-열차 간격 평균은 20.3㎝였다. 이 간격에 대한 기준이 10㎝로 마련된 건 2004년 도시철도법상 규칙이 개정되면서다. 이 10㎝는 휠체어 장애인들이 무리 없이 탑승할 수 있는 간격인 동시에 비장애인도 편안한 승차감을 느끼는 길이다. 문제는 현재 기준으로도 전체 서울지하철 역사의 90%에 이르는 2004년 이전에 공사한 곳에는 ‘면죄부’를 주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이에 151개역 3607곳 승강장은 여전히 연단 간격이 10㎝가 넘는다.

지난 29일까지 장애인단체들이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이어왔던 3호선 경복궁역도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10㎝를 넘는 역사다. 예고된 시위 때라 그나마 공사 직원들이 나와 있어, 장애인들이 열차를 탈 때 서둘러 이 간격을 보완하는 ‘이동식 발판’이 깔렸다. 이에 10명이 넘는 장애인이 한 승강장에서 한줄로 열차에 탑승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 남짓이면 충분했다. 평상시라면 장애인들은 도착하기 몇 정거장 전부터 역사에 연락해 이동식 발판을 가져와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일일이 연락하는 것도 번거롭지만 직원이 제때 맞춰 나오지 못해 ‘큰맘’ 먹고 도약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간격’뿐만이 아니라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높이인 ‘단차’까지 고려하면, 난도는 더 높아진다.

지난 31일 장애인단체에서 두번째로 삭발에 나선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울먹이며 말했다. “출근길 불편을 드려 시민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저는 단지 지하철을 타는 우리 시민분들의 삶이 부러웠다. 나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원한다. 이동할 때 ‘떨어져 죽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정말로 힘들었다.”

이준석 대표의 말처럼 장애인들은 ‘선자’ 집단이 아니다. 그렇게 주장한 적도 없다. 그저 비장애인에게 당연한 것조차 투쟁해야 평범한 삶을 획득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대표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하지 않는” 시위 방식을 시도했더니, 들은 척하는 사람이 적어 감행한 게 출근길 지하철 시위였다. 최용기 회장은 이날 이 대표에게 “일주일만 함께 휠체어를 타보자”고 제안했다. 아직 답변이 나오지 않았으나 그가 꼭 이 제안을 수락했으면 한다. 지하철만 한정하더라도 ‘엘리베이터 설치율’만의 문제가 아닌 디테일을 체감할 절호의 기회니 말이다. 이 대표가 의지를 드러낸 ‘무제한 토론’에도 논거가 풍부해지니 금상첨화일 것이다.

박수지 이슈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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