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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취재파일] 중2병, 그 절망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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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특목고 정책이 이대남을 키웠다?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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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2병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담겼다는 책을 추천 받았습니다. 우석훈 경제학 박사의 <슬기로운 좌파 생활>이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한 챕터에 <<중학교 2학년, 여기가 최전선이다.>>라는 제목을 붙이고 중2병이 여성 혐오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중학교 2학년, 자신이 특목고 트랙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은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절망하게 되는 시기에 남학생들은 '남초' 게임 커뮤니티에서 마초이즘을 학습하면서 '여성 혐오'의 취향을 형성하게 된다고 썼습니다. 지금의 이대남 (20대 남성)의 여성 혐오는 중학교·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자라왔다면서, 현재 중학생들은 지금 20대 남성보다 더 보수화되고, 더 강한 여성혐오 성향을 띨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동시에 여학생들도 남성 혐오 성향을 키워가면서 결혼은 꿈도 꿀 수 없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결국 엘리트 코스에서 벗어난 중학생들이 학교 교육에서 소외되고, 이들이 외로운 늑대, 젠더 전쟁의 전사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우석훈 박사가 ‘88만 원 세대’에 이어 구조적인 절망에 빠진 세대를 다룬 것인데, 저는 이 부분에서 최근에 나온 교육 관련 통계들이 떠올랐습니다.

중학생은 공교육 소외 계층?



오미크론 확산 여파로 지난 2일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개학 직후 원격수업으로 전환하는 학교가 속출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일 기준 서울지역 학교의 등교 현황을 보고 놀랐습니다. 전체 학교의 정상 등교 비율은 66%였는데, 중학교는 39.1%에 불과했습니다. 제대로 학교에서 수업한 중학교가 10곳 중 4곳에 불과하단 겁니다. 초등학교 53.6%, 고등학교 59.2%와 비교해도 낮은 수치입니다. 초등학교는 돌봄 차원에서 매일 등교가 원칙인 1, 2학년생을 비롯해 아직 집중력이 떨어지는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학교장이 쉽게 원격 수업을 결정할 수 없다는 이유가 있겠고,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를 대비한 점수 관리가 강조되는 데다 백신 접종률도 높아 학생·학부모 모두 등교 수업을 선호한다고 추정됩니다. 이에 비해 돌봄이나 입시 기능이 가장 약한 중학교는 등교 수업의 동력이 떨어지는 겁니다. 우석훈 박사가 이 책에서 비로소 코로나 2년 차에 중학교 등교 수업이 논의됐다고 적었는데, 이번 통계는 중학생에 대한 학교 현장의 인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셈입니다.

자사고·특목고 진학 희망자, 사교육비·참여율 모두 가장 높아



특목고 트랙에서 제외된 중학생의 그림자는 지난 11일 발표된 사교육비 통계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초·중학생이 진학을 희망하는 고등학교 별로 사교육비 지출을 분석해보니, 사교육비 지출액이나 참여율 모두 자율형사립고--과학고·영재학교--외고.국제고 순으로 높았습니다. 1인당 월평균 50만 원이 넘는다는 사교육비는 둘째치고, 사교육 참여율이 자사고 희망자 88.8%, 과고·영재학교 87.3%, 외고·국제고 87.2%나 됐습니다. 예전에 과학고나 영재학교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학원에서 새벽 3-4시까지 공부하는 걸 봤기에 그들이 사교육비도 가장 많이 쓰는 줄 알았는데, 자사고 진학 희망자가 사교육비나 참여율에서 1위라는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한 입시 전문가는 이렇게 분석하더군요. 자사고를 가기 위해 사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부모의 교육열이 높아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을 많이 받는 학생들이 대학 진학 성적이 좋은 자사고를 골라서 가는 것이라구요. 자사고.특목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일수록 사교육 참여와 지출이 높다는 통계는 이들과 특목고 트랙에서 제외된 학생들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특목고 트랙에 오르려면 자신의 학습 능력뿐 아니라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아이들은 깨닫게 되고, 더 큰 꿈을 접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생망' 중2를 구하라



이런 절망감 때문에 일반고등학교가 더 망가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고등학교가 학습과 입시 관리를 열심히 안 하거나 교사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면학 분위기가 떨어지고 대학 진학률이 낮은 게 아니라, ‘이미 나의 미래는 결정됐다’ 라며 절망하는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제대로 동기 부여를 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일 수 있습니다. 아직 백세 인생의 출발점 근처에 서있다는 걸,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절망감에서 끌어올리는 교육 정책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석훈 박사는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절망의 재생산 구조가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한다고 썼는데, 한 명 한 명 소중한 아이들을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키우려면 결국 우리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오는 2025년 일반 고등학교로 전환될 예정이었던 자사고와 외고·국제고의 운명이 바뀔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새 정부는 자사고와 특목고의 존속 문제를 결정할 때 수월성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의 역량 개발과 더불어 여기에서 제외된 학생들의 절망감을 보듬을 수 있는 방안도 반드시 함께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사진=연합뉴스)
김경희 기자(ky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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