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주장을 수년째 앞장서 펼쳐오고 있는 유튜버 공병호씨는 대선 3일뒤인 12일 '무자비한 조작선거'라는 제목의 콘텐츠를 올렸다. 그는 다른 유튜버가 입수했다는 서울지역 선거결과 데이터를 인용해 "당일 투표에서 윤석열은 14.45% 앞선 반면 사전투표에선 이재명이 10% 이상 앞섰다. 사전투표 득표율과 당일투표 득표율에서 약 20%p 편차가 난다. 이런 일은 조작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씨는 대부분 사전투표, 일부 당일투표를 통해 약 300만표의 위조투표가 이뤄졌고 전산조작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3·9 대선을 앞두고 사전투표를 해야 하느냐를 놓고 우파 진영내에 논란이 있었다.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는 초박빙이었다. 부정선거를 믿는 이들은 "부정선거의 온상인 사전투표를 하면 진다"고 했다. 믿지 않는 이들은 "저 선동을 따라가면 진다"고 했다. 사전투표율은 역대 최고로 높았다. 사전투표 득표율은 따로 공개되지 않아서 어느 쪽이 더 많이 얻었는지 공식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출구조사를 한 방송사쪽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종합하면 사전투표에선 이재명이 크게 앞서고 당일 투표때 윤석열이 따라잡은 것으로 추정이 된다.
공씨는 보수 유권자들은 사전투표를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던 대표적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지금 "사전투표와 당일투표간 편차는 1~3%p 정도가 정상으로 20%p 득표율 편차는 말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보수 유권자들이 공씨 등의 사전투표 부정 주장에 영향받아 사전투표를 피하고 당일날 집중적으로 투표했다면 큰 편차가 나는 것이 정상이다. 내가 공씨라면 보수층에 미친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해 기쁠 것같다. "사전선거 부정에도 불구하고 당일투표를 많이 한 덕분에 이겼다"고 말하면 말은 된다. 그런데 그는 "이것은 비정상이다"고 말하고 있다. 공씨는 사전투표 거부를 제안할때 속으로는 사람들이 자기 말을 안들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인가. 실없는 사람 아닌가. 왜 되지도 않을 일을 주장해서 보수층을 헷갈리게 한단 말인가.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만일 사전투표와 당일투표 편차가 1~3% 포인트 났다면 과연 공씨는 "이것은 정상이다"고 수긍했을까. 혹시 "보수층이 대거 보이코트한 사전투표와 당일투표가 이렇게 차이가 안날수는 없다. 사후조작의 정황이다"고 하지는 않았을까. 공씨는 사전투표와 당일투표 부정에 더해 전산조작까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 말대로라면 피해갈 구멍이 없다. 위조표를 찍어내고 전산으로 '마사지'하는 마당에 사전투표를 피한들 무슨 소용인가. 도대체 무슨 수로 야당이 이기나.
공씨 주장은 그러나 우파 내에서 여전히 먹히고 있다. 대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먹히고 있다. 그것은 0.73%p 차이를 납득하지 못하는 우파의 심리 때문이다. '어떻게 문재인 정부 5년을 겪고 나서, 그것도 이재명이라는 '말도 안되는' 후보를 상대로 0.73%p 밖에 못 이기나. 대선 며칠전까지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다 이겼는데 막판에 뒤집힐 뻔 했다는게 말이 되나.'
공교롭게도 이번 선거에선 1인 2투표지, 기투표자에게 투표지 재발부 등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설마 부정선거까지야' 생각하던 사람들도 이런 정황에 0.73%p가 더해지면서 '아 이건 뭐지'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기껏 농담처럼 가볍게 흘려들었던 공병호류의 부정선거 주장에 자꾸 귀가 쏠리는 것이다.
한국 우파 진영에서 부정선거 주장이 등장한 것은 2020년 4·15 총선 직후였다. 최초 문제제기는 지역별 득표수치에서 우연으로 보기에는 매우 작위적인 숫자의 흐름이 관찰된다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그것은 '대규모 사전투표 부정과 전산조작이 있었다'는 음모론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우파내 분기를 불러왔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믿는 사람들은 그해 연말 미국 대선때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을 실시간으로 퍼 날랐다. 믿지 않는 이들은 여기서 결정적인 환멸을 느꼈다. 부정선거가 민주국가들 사이에 유행병처럼 번진다는 그 주장은 너무 음모적이어서 유치할 정도였다. 그것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악한 종교' 이거나 혹세무민으로 코인을 빨려는 타락한 장삿속일 것이었다.
부정선거론자들은 그러나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유튜브에 콘텐츠를 올렸고 구독자는 늘면 늘었지 줄지 않았다. 총선 재검표 등 부정선거 주장을 입증하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 '부정선거는 없었다'고 누가 입증할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번 대선에 앞서 그들은 '사전투표 거부 운동'으로 재미를 봤다. 실제 사전투표를 찝찝해 하는 유권자들이 꽤 있었다. 공병호를 믿건 안믿건 안전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선은 정권교체로 끝났다. 논리적으로는 선거부정 주장이 부정되어야 한다. 만일 그들 주장대로 '성공하지 못한 부정선거'였다면 정권이 바뀌었으므로 곧 그 진상이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부정선거론자들은 여기서 안전장치를 한개 더 깐다. 선관위 하부조직은 일종의 비밀결사 조직같은 것이어서 정권교체가 영향을 못 미칠수 있다는 주장이다. 빨리 이들 조직을 손보지 않으면 6월 지방선거때 또 부정선거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누가 이기는지와 관계없이 그들은 부정선거론을 연장시킬 논리를 계속 만들어낼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사전투표 반대 운동과 관련해 공병호씨와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민경욱 전 자유한국당 의원 등을 대선전 검찰에 고발했다. 허위사실 유포를 통한 선관위 직무집행 방해, 유권자의 자유로운 사전투표를 방해해 공직선거법 제237조(선거의 자유방해죄)를 위반한 혐의 등이다. 한편 검찰은 사전투표 관리 부실 등을 이유로 시민단체가 고발한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 두 고발 사건은 연결이 되어 있다. 이 사건 수사를 통해 지난 대선이 단순한 부실관리였는지, 아니면 조직적 선거부정이었는지 검찰이 검증했으면 한다. 공병호씨도 유튜브에서 그렇게 해 달라고 주장한다. 부실관리로 결론이 났을때 그가 또 어떤 말을 할지는 두고봐야겠지만 말이다. 공씨의 말대로 부정선거는 좌우익의 문제도 아니고 정파의 문제도 아니며 국기문란이자 반역죄이다. 만에 하나 그런 개연성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공씨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나락에서 구한 영웅이 될 자격이 있다.
공씨 등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망상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그들에게 현실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기껏 벌금밖에 더 내겠나. 그 망상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누추해지고 정치 불신의 비용이 얼마나 더 커졌는지와 상관없이 그들은 계속 유튜브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돈을 벌 것이다. 그래도 검찰이 수사로 정리해 줄 필요는 있다. 가짜뉴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로 반박하는 것 뿐이다. 짜증스럽고 힘이 들지만 그 수밖에 없다.
[노원명 오피니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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