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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새벽 3시 40분,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패장의 말은 길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지, 국민들의 판단은 언제나 옳았습니다." 24만 7천77표, 0.73% 차 석패. A4 용지 1장 분량의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패장'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그렇게 사인(私人)으로 돌아갔습니다. 2010년 경기 성남시장에 당선된 지 12년 만입니다.
"저는 정치를 끝내기에는 아직 젊다"
이제 '정치인' 이재명은 어떤 내일을 맞이할까요? 그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네, 맞습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가난한 소년공'이 훗날 거대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모르는 것은 당사자인 이 후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민주당 출입기자 이른바 '마크맨'으로서 이 후보에게 수고하셨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는 "감사합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다시 뛰겠다.", "힘을 내겠다" 등 미래 상황을 짐작해볼 다른 언급은 없었습니다. 이 전 후보 측근들 역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습니다. 패배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재기 시점과 방식을 언급하는 것을 삼가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앞서 이 후보가 했던 발언, "저는 정치를 끝내기에는 아직 젊다"는 여기에 주목합니다. 아직 만 57세인 만큼 명예직인 당 상임고문직과 별개로 정치적 활동에 나설 것이란 의견이 우세한 것입니다. 실제로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이 후보는 역대 민주당 대선 후보 중 최다 득표(1,614만 7,738표)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당내 분위기 역시 책임론보다는 선전했다는 분위기가 우세합니다. 이 후보는 어떤 길을 앞으로 걷게 될까요?
1. 오는 6월 지방선거 도전설
가장 먼저 80여 일 앞으로 다가온 6월 지방선거에 나설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옵니다. 실제로 지난 대선 경선을 앞두고도, '이 전 후보가 6월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재선에 도전한 뒤,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는 얘기가 정치권에서는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을 토대로, 이 전 후보가 경기지사 직에 다시 도전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 전 후보 측근들은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민주당 한 재선의원은 "선거를 준비할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이미 당내에선 김태년, 조정식, 안민석 의원과 염태영 수원시장 등이 (출마를) 준비 중인 걸로 안다. 도의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6월 지방선거에서 당을 위해 경기지사가 아닌 다른 험지에 출마할 생각은 없느냐?'라고 되물었지만, 해당 의원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쉬면서 선거 과정을 되돌아볼 것으로 안다."라며 마찬가지로 부정했습니다.
2. 오는 8월 전당대회 당권 도전설
또 다른 관측은 '당권 도전'입니다. 이 전 후보가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 나와, 차기 당권을 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문 대통령도 2012년 첫 번째 대선 도전에 패배한 뒤, 당 대표를 거쳐 2017년 대권을 잡았습니다. 이 전 후보 역시 이 길을 걸어가며 당내 지지 기반을 더 다지는 방향으로 전략을 잡을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빨리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친문재인계' 이른바 '친문'을 중심으로 한 당내 지지 기반이 탄탄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한 '친문' 의원은 "(이 전 후보도) 선거를 치르며 약한 당내 장악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이란 말을 꺼냈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만약 당권을 잡는다면 '당내 장악력'이란 숙제를 조속히 해결하면서, 동시에 '경력 단절' 기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노려볼만한 시나리오다."라고 의견을 전했습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습니다. 차기 전당대회에 도전할 경우, 이미 세평에 오르고 있는 '친문' 핵심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과 홍영표, 설훈 의원 등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습니다. 대선을 치르며 이 전 후보는 '친문' 의원들과 소위 '원팀'을 이루긴 했지만, 물리적으로만 같이 있을 뿐 완전한 화학적 결합까지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 중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친문과의 마찰은 이 전 후보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3. 2024년 총선 출마설
이 같은 이유로, 상당수 의원은 이 전 후보의 유력한 정치적 재기 방식으로 '2년 뒤 총선 출마'를 꼽았습니다. 당장 급하게 서둘러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지 않아도 되고, '0선 대선 후보'라는 꼬리표를 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전 후보는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거쳤지만, 국회의원은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아 여의도(의회)정치를 모른다는 비판을 당 경선 과정에서도 많이 받아왔습니다.
민주당 다선 중진 의원은 "문 대통령처럼 다시 대권에 도전하려면,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서 가야 한다. 너무 급했다. 정치의 8할은 여의도(국회)에서 이뤄진다. 여의도를 모르고 청와대를 가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여기 있는 국회의원들도 불행해진다. 대통령 하려면, 홈런을 맞더라도 직구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얘기를 이 후보에게도 직접 전했었다."라며 총선 출마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또 다른 재선 의원도 "(이 전 후보가) 당내 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몇 달 남지 않은 전당대회에 나가는 것은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 그보다는 2년 뒤 총선에서, 특히 경기나 서울 말고 TK 같은 '험지 출마'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지면 없는 죄로 감옥 갈 것 같다."…길어질 수 있는 재기 시점
"얼굴은 가련하다."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입니다. 그는 "얼굴은 기본적으로 우리 몸에서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은 곳이며, 언제나 취약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대선 취재 과정에서, 레비나스의 이 말을 떠올린 건 지난 1월 22일이었습니다.
그날, 이 후보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한 '즉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 정권은 때는) 혹시 잘못한 게 없나 가혹하게 털긴 해도 없는 죄를 만들지는 않았다."라면서, "이번에 제가 지면 없는 죄로 감옥 갈 것 같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당시 이 후보 측은 윤 당선인의 '보복 정치'를 경계하는 차원에서 내놓은 발언이라고는 설명했지만, 어쩌면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 이 후보가 자신의 운명을 내다본, 자신의 '가련한 얼굴'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낸 말은 아닐까 내심 생각했습니다.
결국,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이 전 후보 측에 대한 '수사'라는 분석도 적지 않습니다. 민주당 관계자들도 "예상보다 정치 일선에 다시 나서는 시점이 길어질 수 있다. 선거 경쟁 과정에서 불거진 개인적인 '위험 요소'를 정리하는 게 급선무다."라고 전했습니다.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경제인 출신 한 민주당 초선 의원도 "정권 심판론은 우리 모두 다 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데, 그것과 별개로 (이 전 후보의) 개인적인 문제는 혼자 책임져야 한다. 그걸 극복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개인적으로 낙관하기만은 어렵다고 본다."하고 말했습니다.
앞서 이 전 후보는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대장동 의혹 관련해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해왔습니다. 당연히 국민의힘을 겨냥한 전략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자칫 이 전 후보가 수세에 몰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또한, 배우자의 법인카드 유용 등의 논란에 대해서도 이 전 후보는 "책임을 지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이는 이 후보는 물론 배우자 김혜경 씨까지 검찰·특검 수사 등 사법적인 후폭풍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도 당선인사에서 '부정부패 엄단'을 강조했고, '대장동 의혹 수사를 어떻게 할 것이냐' 질문에는 "시스템에 의해서 가야 할 문제"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법조인 출신의 한 민주당 의원 역시 "윤 당선자가 공언했듯이, 한동안은 우리 사회 전체가 대장동 후폭풍 혹은 후유증을 겪을 수밖에 없다. 힘들고 혹독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자칫하면 피바람까지 불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꼬투리 잡힐 만한 것이 나오면 급소를 찔릴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습니다.
"정치는 물리학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프랑스 화가 로랑생은 자신의 시 '잊힌 여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힌 여인이다." 이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 전 후보를 열심히 도왔던 한 초선 의원이 저에게 전해준 말이기도 했습니다. "정치인은 잊힌다는 것이 제일 두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다. 오죽하면,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 기사를 빼고는 모두 환영한다고 하겠나. 그분도 그럴 거다. 국민에게 또 정치권에서 잊히는 것이 두려울 것이다. 잊히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할 거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정치에 대해 "물리학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물리는 계산과 예측이 가능한 영역인 반면, 정치는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인간의 감정과 심리, 판단에 기인한 영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짧은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재명이란 정치인의 내일 역시 양자역학이나 천체물리학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복잡·미묘한 영역에 있을 것입니다. 잊히지 않으려는 이 전 후보의 노력과는 별개로, 그래서 그의 내일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당장 전직 대통령들과 대선에서 패배했던 정치인들이 걸어갔던 여러 모습의 '내일'을 떠올려보면, 이는 더 선명해집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당 관계자들과 의원들 역시 그런 이유로 섣부른 예측을 삼갔습니다.
과연 '정치인' 이재명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 '내일'은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될까요? 정치권이 풀어야 할 숙제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 함께 지켜봐야 할 화두로 남았습니다.
한세현 기자(vetm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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