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당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을 하러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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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의 직전 경력은 '법조인'이 유일하다. 좋게 보면 한 우물만 파다가 대통령 자리로 직행한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법조계 이외의 경력이 전무하다는 의미도 된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바로 검찰로 입성해 2021년 검찰총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그는 천생 '검찰'이었다. 2002년 잠시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외도'를 했지만, 1년 만에 다시 검찰로 돌아올 정도로 그는 검사다.
그랬던 그가 검찰총장직을 버리고 3개월 만인 2021년 6월 말 대선 출마를 단숨에 선언했고, 이후 8개월여 만에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야말로 파격이다. 과거 고건 전 국무총리·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관료 출신 대망론이 허탈하게 끝났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윤 당선인은 우려를 딛고 검사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첫 사례가 됐다. 탄핵 후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출범한 문재인정부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이 '정권교체'를 열망으로 만들었고, 그 문재인 정권의 사람이었지만, 권력에 맞서 대항하다가 밀려나며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윤 당선인의 이례적 초스피드 출세가도는 이렇게 탄생했다.
검찰총장 취임 직후 발생한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정부와 갈등을 빚으며 2020년 말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의해 검찰총장 정직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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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29일 매헌 윤봉길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와 정치 입문을 선언하며 '공정과 상식'을 전면에 들고나온 윤 당선인은 '당연히' 국민의힘으로 입당할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그의 고민의 시간은 생각보다는 길었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지만, 국민의힘에 대한 비호감도도 상당한 상황, 그리고 윤 당선인이 기존 정치인과 다른 '정치 신인'이라는 점에 대한 국민의 호감이 크다는 점이 입당을 망설이게 했다. 그러나 당의 도움 없이 언론과 만나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줘야 하는 과정에서 말 실수와 각종 논란도 불거졌다. 이를 해명하고 바로잡는 과정도 서툴렀다. 정치권에 단 한 번도 몸담지 않았던 지지율 1위 야권 주자에 대한 견제도 거셌다. 결국 그는 '정당'의 보호막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고, 작년 7월 말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입당하며 제1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가 됐지만 이미 대선 출마 경험이 있는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나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 쟁쟁한 경력의 정치인들과 당내 경선에서 맞붙으면서 험로를 맞이했다. 여러모로 '정치권 문법'에 서툴렀던 윤 당선인은 특유의 '솔직화법'과 검사 특유의 '미괄식 말하기' 등으로 불필요한 대중의 오해를 샀다. 정치인들은 익숙한 '토론'에서도 그는 초반 고전했다. 설상가상으로 경선이 한참 달아오를 무렵 터져나온 이른바 '고발사주' 사건은 그의 '공정' 이미지에 손상을 줬다. 부인 김건희 여사의 경력 부풀리기나 이른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관련 내용도 마이너스가 됐다. '독보적 1위'일 것 같았던 윤 당선인의 지지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당내에선 '그래도 윤석열'이라는 여론이 대세를 이뤘고, 수많은 의원들과 인사들이 윤 당선인을 도왔던 만큼 단단하게 지지기반이 지켜졌지만,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의원에게 9월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연이은 토론에서 '1위 후보'답게 난타당하면서 '무능' 이미지도 덧씌워졌다. 그러나 문재인정부의 실정에 가장 강하게 반발하며 권력에 저항하는 윤 당선인의 이미지는 굳건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21년 11월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2차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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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5일, 윤 당선인은 여론조사에서는 홍 의원에게 밀렸지만,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고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입당 3개월여 만이다.
후보 선출 이후 과정도 난항이었다. 작년 초부터 그를 물밑 지원했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잡음이 불거졌고, 선대위 구성이 차일피일 밀렸다. 같이 경쟁했던 당내 주자들의 지지도 쉽게 얻어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의 갈등이 불거졌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윤 당선인 주변 인물들과 이 대표와의 갈등은 이 대표의 선대위 이탈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낳았고, 작년 12월 초 간신히 정리되는 듯했던 갈등 상황은 이후 한 번 더 불거지면서 이때 윤 당선인의 지지율을 전에 없는 수준으로 급락시켰다. 2021년 초 설상가상으로 김종인 당시 총괄선대위원장의 선대위 해체 선언이 윤 당선인과의 상의 없이 있었고, '우유부단'하게 보였던 윤 당선인에 대한 불신으로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과 결별하고, 선대위를 선대본부로 재편하며, 이 대표와도 완전히 갈등을 해소하면서 윤 당선인은 자신감을 얻었다. 지지율도 회복됐다. 이후에도 굴곡은 있었다. 2월과 3월 내내 정치권을 달궜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야권 단일화 문제가 대표적이다. 2월 13일 안 대표가 제안하고, 20일 윤 당선인의 '무응답'을 이유로 안 대표가 스스로 제안한 단일화를 철회하고, 27일 윤 당선인이 기자회견을 열어 '책임공방'을 벌이자 지지율은 흔들렸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윤 당선인 스스로가 그립을 강하게 쥐고 머뭇대지 않았고, 결국 지난 3월 3일, 안 대표의 출마 포기와 지지를 끌어냈다.
결국 1월 이후엔 지지율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돌아오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정치인 경험은 8개월여에 불과하지만, 26년 검사생활을 하며 얻은 다양한 경험과 조직 장악력, 그리고 빠른 습득력, 그리고 '공정'의 이미지는 윤 당선인을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검사 출신의 대통령 직행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박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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