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 사라예보의 장미 = 김호운 지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는 1990년대 내전 당시 포탄과 총탄이 떨어진 곳에 빨간 페인트를 뿌려놓은 전쟁의 상흔이 있다. 이 모양이 마치 붉은 장미꽃 같아 사라예보의 장미라 불린다.
'사라예보의 장미'를 표제작으로 한 김호운 작가의 소설집으로, 단편소설 11편과 엽편소설 2편이 수록됐다.
표제작은 사라예보의 음울한 시공간을 경험적으로 재현한 일인칭 소설이다. 유럽 배낭여행 막바지 사라예보를 방문한 화자가 내전이 남긴 상처에 고통받는 민박집 가족을 통해 역사의 비극성을 비춰본다.
다른 작품 '바람이 된 섬'에는 단독주택 재건축 바람으로 '섬'처럼 남은 집에 사는 중년 사내, '우상을 위하여'에는 새끼돼지와 함께 읍내 장터에서 노숙하는 여인, '틴테레토의 겨울'에는 대학 전임 기회를 놓치고 학원 강의로 세월을 이어가는 학원 강사가 등장한다.
각각의 인물이 벌여나가는 서사는 다채로운 인간의 삶을 조명한다.
도화. 346쪽. 1만5천 원.
▲ 햇볕 쬐기 = 조온윤 지음.
시인은 세상 모든 혼자의 곁에 서서 사려 깊은 연민을 보여준다. 고립이 일상이 된 지금 타인의 온기를 잊지 않길,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길 바라는 손짓도 한다.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으로 온화한 서정의 시 세계가 자리했다.
'혼자가 되어야 외롭지 않은 혼자가 있습니다/ (중략)/ 당신 곁에 찾아와/ 조용히 앉아만 있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가 나의 왼손입니다'('묵시' 중)
'지금 내 왼손을 잡은 사람과/ 내 오른손을 잡은 사람이 손을 놓지 않으며/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줄 때// 내 주변에 있는 모두와 내 주변에 없는 모두의/ 궤도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더이상/ 나는 바깥에 있지 않았다'('주변인' 중)
나희덕 시인은 그의 시들을 '내향적 산책자의 수화(手話)'로 빗대며 "햇볕에 몸과 마음을 내어 말리는 고즈넉한 시간과 침묵의 단단한 뼈가 곳곳에서 만져진다"고 소개했다.
창비. 152쪽. 9천 원.
▲ = 박애진, 임태운, 김이환, 정명섭, 김성희 지음.
'심청전', '별주부전', '해님 달님', '장화홍련전', '흥부와 놀부' 등 고전 다섯 편이 과학소설(SF)로 재해석됐다.
익히 알려진 인물과 설정에 작가들의 과학적 상상력이 뻗어나가며 스토리는 흥미진진해지고 인물의 선택, 감정, 갈등의 스케일도 커졌다.
임태운의 '-코닐리오의 간'은 용궁주의 명령으로 '클론'의 간을 구하러 육지로 간 안드로이드와 클론 소녀 코닐리오의 만남을 그렸다.
정명섭의 '부활 행성-홍련의 모험'에선 계모의 계략으로 우주에서 실종된 언니를 찾아 나선 우주비행사 홍련의 모험이 펼쳐진다.
시대가 변화하고 새 장르를 만나며 옛이야기 속 여성들의 모습도 재창조됐다. 심청이는 제물로 바쳐지는 데 순응하지 않고 운명을 개척하는 인물로 태어났다. 홍련은 계모에게 학대당하는 힘 없는 모습을 벗고 필요하면 복수도 마다하지 않으며 주체적인 결정을 한다.
사계절. 288쪽. 1만5천 원.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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