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삿일에 어린이도 동원…탈레반은 사실상 방관
양귀비 재배를 위해 밭을 고르는 아프간 칸다하르의 농부. |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탈레반이 집권한 아프가니스탄의 경제가 크게 악화하자 호구지책으로 양귀비를 재배하는 농부가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귀비는 아편과 헤로인 등 마약의 원료로 쓰이며 아프간은 이미 세계 아편의 85%가량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국이다.
아프간 톨로뉴스는 남부 헬만드주, 칸다하르주 등을 직접 취재해 최근 양귀비 재배가 급증한 현지 상황을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취재진은 현지 시장에서 아편 등 여러 마약이 공개적으로 팔리는 것도 확인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2020년 아프간의 양귀비 재배 면적은 22만4천헥타르로 전년보다 37% 증가했다.
탈레반이 재집권한 지난해부터는 이런 추세가 더욱 가속했다. 전국적으로 내전이 격화하면서 정상적으로 농사를 짓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가뭄까지 겹친 바람에 농부들이 앞다퉈 양귀비 재배로 눈을 돌린 것이다.
한 농부는 "다른 것은 재배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이전에는 우리는 밀을 심었지만, 올해는 양귀비를 재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양귀비는 재배 과정에서 물이 거의 필요하지 않으며 심은 후 5개월만 지나면 수확이 가능하다.
일단 아편으로 가공되면 별도 냉장 시설이 없더라도 수년간 보관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아편은 밀수업자가 유통하기 때문에 국경 폐쇄도 장애가 되지 않으며 수익성도 다른 작물보다 훨씬 높다.
지난 15년간 양귀비를 재배한 모함마드 카림은 "양귀비를 재배하지 않으면 좋은 이익을 얻을 수 없다"며 밀은 충분한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귀비 재배는 현지 아동 교육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많은 어린이가 학교 대신 양귀비 생산을 위해 밭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한 주민은 "가난이 너무 심각해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탈레반의 미묘한 처지도 양귀비 재배 억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탈레반은 지난 1차 통치기(1996∼2001년) 때인 2000년 양귀비 재배를 금지한 적이 있다. 당시 조처로 양귀비 생산량이 90%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1년 미군에 의해 정권을 잃은 후에는 점령지 농민들로부터 양귀비 판매액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둬들이고 마약을 거래하며 재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은 재집권 직후에는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사실상 방관하는 분위기다. 온 국민이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린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아예 양귀비 재배를 막을 계획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우리 국민은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데 그들의 유일한 수입 수단을 막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프간은 탈레반 재집권 후 만성적인 외화 부족이 더 심해지며 국가 경제 붕괴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아프간 헬만드주의 양귀비밭. |
c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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