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경기 구리의 한 편의점 직원 이모씨가 텅 빈 매대를 보며 말했다. 연일 편의점에서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건 최근 한 제빵업체에서 재출시한 ‘포켓몬빵’이다.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캐릭터 스티커가 들어 있는 이 빵이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희귀품이 됐다. 1990년대 후반 애니메이션의 인기에 힘입어 당시 초등학생 사이에서 불었던 스티커 수집 열풍이 다시 거세지면서다.
프리랜서 박모(34)씨가 스티커를 모으려 산 포켓몬빵들. 스티커만 빼고 남은 빵은 주변에 나눠줬다고 한다. 박씨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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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수집 열풍에 사재기 현상까지
SPC삼립은 지난달 23일 1999년 발매됐다가 2006년에 단종된 포켓몬빵을 재출시한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포켓몬빵에 대한 향수가 있는 20~30대를 중심으로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는 등 재고 부족까지 빚어지고 있다. 부모에게 받은 용돈을 쪼개서 빵을 사 먹던 20~30대가 구매력을 갖추면서 벌어진 현상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서울의 한 30대 직장인은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고 싶어 편의점 여섯 군데를 돌았는데도 재고가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 빵이 처음 발매됐을 당시 초등학생들이 스티커만 갖고 빵은 버리는 현상이 만연하자 언론에서 이를 지적하는 촌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20여년이 흐른 최근엔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에 ‘스티커 없는 빵을 무료로 나눠준다’는 게시물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스티커를 모으려 빵 78개를 샀다는 프리랜서 박모(34)씨는 “편의점 빵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서 가는 식으로 발품 팔아 빵을 구했다.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을 통해 동네 자취생들에게 빵을 나눠줬다”고 말했다.
포장을 뜯기 전까진 안에 어떤 스티커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어 자신이 뽑은 희귀한 스티커를 소셜미디어에 자랑하는 게 MZ 사이에선 놀이문화로 굳어졌다.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RM(28·본명 김남준)도 지난달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포켓몬빵 스티커를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왼쪽부터 지난 1일과 3일 경기 구리의 한 편의점에 놓인 포켓몬빵 전용 매대. 재고 부족이 잇따르면서 주문한 물량도 다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박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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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 상품에 자발적 마케팅 나선 MZ
MZ 소비자들의 ‘바이럴(입소문) 마케팅’에 힘입어 식품업계도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소셜미디어 사용이 활발한 20~30대의 학창시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제품을 재출시해 소비자의 자발적인 마케팅을 유도하는 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만든 광고보다 젊은 소비자들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더 번뜩이는 경우가 많다. MZ의 추억 속 제품이 시장에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성인이 된 MZ가 초등학생 때 모았던 스티커에 열광하는 건 ‘키덜트’(‘kid’와 ‘adult’의 합성어로 어린이가 좋아하는 만화·장난감 등에 열광하는 성인) 현상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MZ의 ‘플렉스’(flex, 과시) 문화가 결합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프리랜서 박모(34)씨가 지금까지 모은 스티커. 겹치는 스티커는 중고거래 앱을 통해 다른 사람과 교환한다고 한다. 박씨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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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재력이나 부(富)를 과시하는 플렉스만 있는 게 아니라 또래가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의 물건도 과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를 소셜미디어에 올려 또래의 반응을 끌어내 인정 욕구를 충족하려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일부러 공급을 조절해 희소성을 높이려는 업계의 전략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각지에서 재고 부족이 잇따르자 일각에선 업체가 의도적으로 공급을 조절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SPC삼립 관계자는 “수요가 예상한 것보다 더 많아서 일어난 현상이다. 물량은 최대한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박건 기자 park.k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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