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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3.1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건국 이래 지금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으로 '대한민국 최고훈장'을 받은 애국지사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입니다. 독립 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조차 지난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 대한민국장)이 추서됐을 뿐입니다. 이는 현재 건국훈장 1등급으로 최고 훈장은 아닙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독립운동가 출신 가운데 최고 훈장을 받은 사람이 딱 1명 있긴 합니다. 바로 초대 대통령 이승만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가 최고 훈장을 받은 건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부정선거와 독재에 끝에 4.19 의거로 물러난 그가 어떻게 '최고 훈장'을 받았던 걸까요?
대한민국 최고훈장 '무궁화대훈장'
훈장의 사전적 의미는 "대한민국 국민이나 우방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을 위하여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그 공로를 기리고자 나라에서 주는 휘장"입니다. 우리나라 훈장은 국가와 산업, 국방, 과학기술, 문화, 체육 등 분야별로 11가지가 있으며 그 공적의 정도에 따라 1등급에서 5등급까지 5단계로 나뉩니다.
예를 들어 독립운동가처럼 우리나라 건국과 국가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는 건국훈장이 수여됩니다. 이 건국훈장은 다시 5개 등급으로 세분됩니다. (1등급 대한민국장, 2등급 대통령장, 3등급 독립장, 4등급 애국장, 5등급 애족장)
하지만 이 11개 분야별 1등급 훈장 위에 또 하나의 훈장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입니다. 무궁화대훈장은 분야별 훈장들과 달리 등급 분류도 없습니다. 상훈법 10조는 무궁화대훈장을 우리나라 최고훈장으로 규정하고 수여 대상까지 적시하고 있습니다.
제10조(무궁화대훈장) 무궁화대훈장은 우리나라의 최고 훈장으로서 대통령에게 수여하며, 대통령의 배우자,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 또는 우리나라의 발전과 안전보장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전직(前職)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에게도 수여할 수 있다.
앞서 드렸던 질문, '이승만 전 대통령은 어떻게 최고훈장을 받을 수 있었을까'의 답은 그가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통령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하는 게 꼭 문제는 아닙니다. 외국에도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 크루아(La Legion d'honneur / Grand-Croix )를 신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수여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최고훈장을 규정하면서 그 수여 대상자를 대통령과 그 배우자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라를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고 공로를 세우더라도 그 나라의 최고 훈장은 대통령 부부 외에는 수여하지 못하도록 해놓은 겁니다. 대한민국을 위한 최고의 공헌이, 대선에서 이기는 것, 혹은 그의 배우자가 되는 것이라면 동의하실 수 있겠습니까?
'셀프 수여' 논란보다 중요한 것
무궁화대훈장은 우리나라 최고 훈장답게 제작비 역시 엄청납니다. 금과 은, 루비, 자수정, 비단 등을 이용해 제작되는데 금만 190돈, 그러니까 0.7㎏이 들어갑니다. 조금 오래된 자료이기는 하지만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대통령용이 5,000만 원, 배우자용이 3,500만 원에 달합니다. 안중근 의사와 김좌진 장군 등이 받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이 109만 원, 김수환 추기경이 받은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이 62만 원 정도니까 제작비만 놓고 보자면 무궁화대훈장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46배, 국민훈장 무궁화장의 81배나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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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궁화대훈장 문제를 처음 제기한 건 2013년 이명박 전 대통령 셀프 수여 논란 때입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시끄러웠던 2016년 말에도 그리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 누구나 공훈에 따라 최고 훈장을 받을 수 있게 상훈법을 바꿔보자는 본질은 묻히고 '누구 훈장을 회수하라'거나 '셀프 수여 꼴사납다' 같은 비판만 난무했습니다.
▶ [2013.02.15 취재파일] 최고훈장, 국민에겐 안 주는 나라 -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셀프 수여' 같은 불필요한 논란을 막고 법 자체가 가진 모순을 해결하길 바라며 또 한 번 글을 썼습니다. 새 정부 초기, 문재인 대통령은 '보훈'의 의미를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습니다. 2017년 광복절 경축식에서는 "정부는 대한민국 보훈의 기틀을 완전히 새롭게 세우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은 나라의 이름을 지키고, 나라를 되찾고, 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 그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상훈법 문제를 공론화할 적기라고 판단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글을 쓴 뒤 돌아온 반응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가만 있다가 왜 문재인 대통령 훈장 수훈을 앞두고 이런 글을 쓰냐, 의도가 뭐냐'는 내용의 비판 댓글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 측에서도 '대통령의 훈장은 개인이 아닌 그 직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다소 질문과는 맞지 않는 답을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 [2017.10.18 취재파일] 대통령님, 무궁화대훈장 어떻게 하실 건가요?
"최고 훈장은 누구에게 주어져야 합니까?"
대선이 이제 꼭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거듭된 문제제기에도 공론화되지 못했던 터라 이번에도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선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께 묻고 싶습니다. "우리 나라 최고 훈장은 누구에게 주어져야 합니까?" 오늘 저녁 마지막 TV토론 때 누가 물어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만간 무궁화대훈장을 받을 걸로 보입니다. 임기 말까지 지지율 40%대를 지키고 있는 대통령이니 만큼 전처럼 '셀프 수여'라는 비판이 거세지는 않을 걸로 예상됩니다. 사실, '셀프 수여' 논란은 법 취지로 볼 때 무의미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대통령에게 주는 무궁화대훈장은 대통령직에 수여하는 것으로, 그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합니다.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조차 무궁화대훈장만큼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즉, 대통령직에 주는 무궁화대훈장을 취소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18대 대통령에 취임 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게 돼 문제가 된다는 설명입니다.)
훈장은 국가를 위하여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그 공로를 기리고자 나라에서 주는 휘장입니다. 공을 세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왕과 귀족이 남아 있는 영국에서도 최고 훈작인 대십자훈장(Knight·Dame Grand Cross)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훈장 수여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업적과 공로이어야 합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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