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과 일터와 교회에도 성소수자가 있을까? 성별 정체성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성경은 성소수자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동성애를 반대하고 금지하는 일부 교단의 결정은 성서적, 신학적으로 정당한 것일까? 예수가 전한 복음에 비추어 볼 때 성소수자는 차별받고 배제돼야 할 죄인인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이 지난달 출판한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이렇게 묻고 답을 제시한다. 국내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연합기관 가운데 하나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산하 정의·평화위원회가 논의를 시작하고 성소수자목회연구모임이 2년간 매달려 내놓은 성소수자 목회·선교를 위한 안내서다. 책은 출판을 위한 펀딩(모금)을 마치고 이번 주부터 각계에 전달됐다.
안내서의 목적은 ‘성소수자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묻고 답을 찾으려는 기독교 목회자와 평신도에게 성찰과 실천을 위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다. 안내서는 교회 안에도 성소수자가 존재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들을 금기시하거나 외면하거나 배척하지 않는 교회,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교회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다. 성소수자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기독교인을 위해서 △과학적 설명 △신학적 해석을 제시하고 나아가 △성소수자 당사자 교인의 경험 △실제로 성소수자를 배척하지 않는 교회를 만들기 위한 실무적 제언도 담겨 있다.
안내서는 교회 내부에도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면서 이들을 배척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환대할 방법을 설명한다. 성소수자 축제에서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기독교대한감리회 교회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이동환 목사와 관련해 지난해 4월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 성소수자는 자신들을 차별하지 말아 달라면서 항상 지니고 다니는 성서를 꺼내 들었다. 한진탁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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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질병 아니며, 후천적 선택 결과도 아냐"
개신교계에서 성소수자는 ‘잘못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무엇보다 동성애는 성서에서 언급되는 죄로 여겨진다. 이에 대해서 안내서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며 후전적으로 선택한 결과도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미국정신의학회는 1973년 동성애를 정신과 진단명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했다”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어떤 권위 있는 정신과 학회나 교과서도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하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언급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의학적, 과학적으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어서 동성애는 후천적 선택의 결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오랜 논쟁의 역사가 있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는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작용해 아동기 초기에 형성된다’라는 것으로 수렴된다”면서 “이것의 의미는 스스로 성적 지향을 인식하게 되는 10대 초기의 발달 단계를 성적 지향을 선택하는 단계라기보다 확인하는 단계로 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일각에서 제기하는 탈동성애 상담이나 전환치료는 의학적이거나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성서를 바라보는 개신교계의 두 관점 설명
안내서는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여러 신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오늘날의 개신교 집단은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크게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성서는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에 신성하다’고 인식하는 개신교 근본주의자들과 보수 복음주의적 기독교인의 집단이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성서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율법이 곧 하나님의 율법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서가 죄로 규정하는 동성애 나아가 성소수자의 성적지향과 정체성 역시 죄로 여겨진다.
저자들은 “한국 개신교회의 경우 근본주의적 목소리가 큰 편”이라며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는 엄격한 윤리적 이상을 강조하던 청교도를 숭상하는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음주와 흡연에 대한 배타적 거부감, 성과 결혼에 대한 보수적 규범, 동성애에 대한 혐오감,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 등을 강조하는 윤리적 특징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서 시작된 논의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이어받아 출판하는 성소수자 목회와 선교를 위한 안내서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기사연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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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고대 문헌"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또 다른 한편에는 ‘성서는 특정한 종교 공동체, 기독교 안에서 신성한 지위를 갖는다’고 인식하는 에큐메니컬(세계 교회 연합 운동) 성향의 기독교인 집단이 있다. 이들에게 성서는 ‘하나님 체험에 대한 인간의 반응, 인간의 산물’로 여겨진다. 히브리 성서의 율법은 하나님의 율법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의 율법이라는 이야기다. 에큐메니컬 기독교인들에게 성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누구이고 공동체와 개인으로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해주는 중요한 문헌’이며 지속적이고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서 ‘우리를 형성해왔고 앞으로도 형성할 책’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고대 문헌’인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주류 개신교 교단에 속한 에큐메니컬 기독교인에게 성서에 나타나는 ‘동성애적 행위에 대한 금지’는 ‘그러한 행위가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용납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말해줄 뿐’이라고 안내서는 설명한다. 비판적 대화를 거듭하면 윤리적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안내서는 “동성애적 행위를 고대 이스라엘에서 이해한 것처럼 (현대의 우리가) 계속해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집필에 참여한 자캐오 대한성공회 신부는 지난해 12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성서의 핵심 정신은 “낯선 존재에 대한 환대와 연대”라고 강조했다. 안내서 역시 성서를 바라보는 개신교계의 두 관점을 제시한 이후, 사회적 약자와 죄인에게 다가갔던 예수의 진심을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안내서는 성서를 ‘하나님의 말들(words of God)’로 이해하기보다 하나님의 뜻과 성격을 드러내는 주요한 이야기와 전통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성서가 가리키는 실재하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체험하는 것과 성서 자체를 믿는 것을 구별하고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학적 선언이 아니라 길잡이용 안내서로 받아들여 주길"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이 성소수자를 죄인으로 취급하거나 그들을 언급하는 것조차 피하는 상황에서 안내서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 NCCK 바깥의 단체를 통해서 출판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NCCK 산하 정의·평화위원회 성소수자교인목회연구소위원회의 최형묵 위원장은 발간사에서 “안내서가 한국교회의 최종적인 교리적 혹은 신학적 선언과 같은 성격을 띤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분들에게는 여전히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일종의 도발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라면서 “하지만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길잡이 성격을 띤 안내서요, 교회의 공적 의견을 형성해 나가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제안서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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