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윤석열, 대선 유세 연설 키워드 전수 분석
20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23일로 9일째에 접어들었다. 공식선거운동의 백미는 공개된 거리에서의 대중 연설이다. 대선 후보들의 국정 철학과 비전,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 상대가 돼선 안되는 이유 등 유권자들에게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가 여기에 담긴다.
무엇을 담았는가만큼 무엇을 담지 않았는지가 중요하다. 연설의 빈 공간을 살펴보면 비호감, 네거티브 대결로 불린 이번 대선에서 조명받지 못한 의제, 차기 정부에서 한국 사회의 과제로 다시 등장할 의제들이 드러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6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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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15일부터 지난 22일까지 8일 동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윤석열 국민의힘 등 거대 양당 대선 후보의 대중 연설 키워드를 전수 분석했다. 이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대선 후보 TV토론이 열린 지난 21일을 빼고 7일 동안 25차례 전국 곳곳에서 연설했다. 윤 후보는 토론 준비로 일정을 비운 지난 20~21일을 제외하고 6일 동안 31차례 각 지역을 돌며 연설했다.
각 후보의 연설에서 인류 공통의 시급한 과제로 꼽히는 기후위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거나 주변적 화두에 머물렀다. 차별금지법이나 소수자·다양성 등 인권 문제도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여성 인권 문제는 분열 극복이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설명하는 차원에서 일부 등장했고, 노동 문제도 주요하게 거론되지 않았다.
연설에 주로 등장한 단어들은 비호감 대선의 일면을 보여줬다. 이 후보는 ‘위기’ ‘경제’를 강조하는 동시에 ‘신천지’ ‘정치보복’ ‘무능’ 등의 키워드로 윤 후보를 공격했다. 윤 후보는 ‘공정’ ‘상식’을 강조하면서 ‘부정부패’ ‘대장동’ ‘좌파’ 등의 단어를 써 이 후보를 공격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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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유세 1곳서만 ‘여성’ 언급
이, 여성 대신 ‘남녀’ 18차례
소수자·다양성 관련은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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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단어들은 두 후보의 연설에서 ‘부재함’으로써 시대적 과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이번 대선의 특징과 한계를 드러냈다. 윤 후보의 31차례 연설에는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울산 연설에서 에너지 문제를 거론했으나 현 정부의 탈원전을 비판하며 산업경쟁력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이 후보의 25차례 연설에선 기후위기는 5번 나왔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일부 언급했지만, 대체로는 ‘위기 극복 총사령관’이라는 메시지에 맞춰 여러 분야 위기를 나열하는 때에 사용됐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소수자·다양성 등 인권 관련 단어들도 두 후보 연설에서 찾아볼 수 없다. 19대 대선에선 거대 양당 후보 중 문재인 당시 후보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이번엔 양강 후보 모두 차별금지법을 거론하는 데 소극적이다.
두 후보는 최근 한국교회총연합·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주최한 정책 발표회에 낸 답변서에서도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변희수 하사 등 성소수자가 잇따라 사망하면서 소수자·다양성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지만, 양강 후보의 8일치 연설에서 관련 단어가 등장한 적은 없었다.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 인권 문제가 ‘갈등’ ‘분열’ 차원으로 다뤄지는 이번 대선 특징도 연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윤 후보의 연설에서 여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지난 18일 경북 칠곡 유세가 유일하다. ‘여성’이라는 단어가 8차례 나오지만, 방점은 여성 인권 대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설명하는 데 찍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4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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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여성(1차례) 대신 ‘남녀’를 주로 언급했다. 각종 연설에서 모두 18차례 ‘남녀’라는 단어를 썼다. 구조적 성차별 해소 방안보다는 ‘갈등 사안’의 하나로 설명하는 때가 많았다. “남녀로 가르고 남북으로 가르고 동서로 갈라서 싸우게 하면 되겠나”(17일 서울 성동), “청년들이 남녀로 갈라 싸우지 않아도 되는 나라”(18일 전남 목포) 등 주로 여러 분야의 통합과 화합이 필요하고 말하는 데 남녀 문제를 포함했다.
노동은 단어 자체가 적게 언급된 건 아니다. 다만 노동 의제들이 주된 화두로 다뤄지진 못했다. 이 후보 연설에선 ‘노동’이라는 단어가 ‘소년 노동자’로서의 경험, 코로나19로 경제적 피해를 입는 플랫폼 노동자를 언급하는 데 주로 사용됐다. 이 후보는 지난 20일 경기 안양 유세에선 “친노동이 반기업인가. 친노동이 친기업이고, 친노동 친기업이 바로 친경제”라고 자신의 노동관을 말했다.
윤 후보는 연설에서 ‘노동의 가치’를 적지 않게 말했다. 다만 “민주당 정권의 노동가치라는 것은 자기와 연대하고 자기 정권 유지의 핵심 지지층 역할을 하는 강성 노조밖에 없는 것인가”(19일 경남 양산), “노동의 가치가 소수의 강성노조, 이와 결탁한 민주당 정권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는가”(19일 경남 거제) 등 주로 ‘강성’ ‘귀족’ 단어를 붙여 노조와 민주당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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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거 등장한 단어들
이재명은 ‘위기·경제’
윤석열은 ‘공정·상식’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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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후보가 핵심 화두로 삼은 단어들은 거리 연설에서도 대거 사용됐다. 이 후보의 경우 ‘위기극복 총사령관’ ‘경제 대통령’ ‘국민통합 대통령’ 등 세 가지 목표를 거의 모든 연설마다 말했다. 윤 후보는 ‘국민이 부르고 키워준 후보’, ‘공정과 상식’ 등을 매 연설에서 강조했다. 코로나와 경제 위기, 민생, 통합 등은 두 후보 모두 자주 사용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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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강점 못지 않게 상대 후보 공격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이 후보 연설에선 ‘신천지’라는 단어가 37차례 등장한다. 이 후보는 윤 후보가 검찰총장 당시 법무부의 신천지 압수수색 지시를 거부했다는 의혹을 연설에서 자주 거론했다. ‘정치보복’(31차례)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였다.
“검찰 왕국의 왕이 돼서 정치보복을 하겠다고 대놓고 선전포고하는 사람이 있다”(18일 전남 나주),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미리 정치보복을 예고하는 사람이 있다”(18일 광주) 등 문재인 정부 적폐수사 필요성을 말한 윤 후보 발언을 공격하는 발언이 잦았다. ‘무능’(22차례)이라는 단어도 적지 않게 등장했다.
이 후보가 ‘유능한 경제 대통령’을 내세운 만큼 자신의 행정 경험에 빗대 정치신인인 윤 후보를 겨냥해 사용하는 때가 많았다.
윤 후보 연설에서 민주당을 비판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부정부패’(76차례)였다. 정권교체의 핵심 이유로 ‘부정부패’ 척결을 전면에 내세우는 때가 잦았다. 이와 관련해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도 36차례 거론했다.
이념을 들어 공격하는 단어가 늘었다. “철 지난 좌파 이념에 빠져서 상식을 도외시”(17일 서울 송파), “좌파 혁명 이론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비즈니스 공동체”(19일 울산)처럼 ‘좌파’(27차례) 등 단어로 색깔론 공세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 대표적 정책 실패로 꼽히는 부동산 문제도 적지 않게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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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인 기자 jeongin@khan.kr
플랫팀 기자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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