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열망을 담아내고자하는 제 진심은 상대에 의해 무참히 무너지고 짓밟혔습니다."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 결렬을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20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는 “저희 당이 겪은 불행을 틈타 상중에 후보 사퇴설과 경기지사 대가 설을 퍼뜨리는 등 (국민의힘이) 정치 모리배 짓을 서슴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안 후보의 이날 기자회견 발언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는 “고심 끝에 또 ‘철수’하려 하느냐는 비판과 조롱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 후보 단일화 제안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롱성 별칭인 ‘철수(撤收)’란 말을 스스로 언급하며 자신이 받은 상처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안 후보의 단일화 결렬 선언이 단순히 조건이나 경선 방식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8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 대표는 당내 대표적 '자강론자'로 꼽힌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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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모욕했다" 국민의힘 내부 '자성론'
안 후보의 결렬 선언을 두고 21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측에서도 “안 후보를 모욕했다. 상대에 대한 국민의힘의 협상 태도가 잘못됐다”는 자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논의 과정에서 안 후보에 대한 존중, 배려가 없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배경으로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앞두고 국민의힘 내부에 양립한 이른바 ‘자강론’과 ‘통합론’이 치열하게 맞부딪쳤기 때문”(영남지역 중진 의원)이란 분석이 나온다. 자강론은 안 후보와의 연대나 단일화 없이도 윤 후보가 ‘다자구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20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교차로의 윤석열 후보 선거운동원 뒤로 보이는 안철수 후보 현수막.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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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론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 이준석 대표다. 그는 안 후보가 여론조사 경선을 통한 단일화를 제안한 13일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는 게 아니라, 역시나 했더니 역시나 한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데 이어, “애초 국민의당과 안 후보는 완주 의사가 부족하다”(14일), “진보진영에 있을 땐 계속 양보하더니 보수 쪽에 오셔서는 저희가 만만해 보이는가”(15일)라고 하는 등 안 후보에 대한 공세를 주도했다.
이 대표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 내부에선 “단일화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란 평가도 나왔지만, “이 대표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17일 정미경 최고위원)와 같은 경고성 메시지도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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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닥친 '자강론' vs '통합론'
국민의힘에선 자강론과 함께 ‘통합론’도 비등하게 제기됐다. ‘확실한 승리’를 위한 안 후보와의 단일화는 필수라는 시각이다. 다만 통합론자들도 “시간을 끌면 안 후보가 먼저 양보할 것”이란 ‘지연파’와 “안 후보를 존중하며 조속한 단일화를 이뤄야 한다”는 ‘배려파’로 나뉘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당내 인사들이 안 후보 측 인사들과 각각 물밑접촉에 나서 여러 단일화 논의 전선을 형성했다”고 복수의 당 관계자가 전했다.
윤 후보에 대한 이들의 보고도 “안 후보가 사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와, “낙관할 상황이 아니다. 안 후보를 존중해야 한다”로 각각 갈렸다고 한다. 캠프 사정을 잘 아는 야권 인사는 “단일화에 대한 당내 생각이 엇갈리는 가운데 선거운동 개시 이후 윤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가 완연해지며 안 후보의 일방 사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며 “후보 의중 역시 자연스레 목소리가 큰 쪽으로 기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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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까지 물밑에서 접촉한 분들은 후보의 공식 뜻을 받아 협의한 건 아니다. 각자 지인 만나서 서로 의사 타진 한 뒤 각자 ‘나 누구 만나서 어떤 얘기를 나눴어요’하고 일방 보고 한 것”이라며 “그러면 후보가 ‘그분들과 이런 얘기가 진행되고 있구나’란 감을 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국민의힘 내부에선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윤 후보가 직접 나서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윤 후보와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로 40년 지기인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밤이라도 후보님께서 안 후보님 댁으로 찾아가십시오. 삼고초려 하십시오”라고 썼다. 이어 “유세현장의 환호만으로, 몇% 우세한 여론조사만으로, 어퍼컷 동작만으로 (대선은) 안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윤 후보가) 더 간절하셔야 한다. 더 겸손하셔야 한다. 바짝 옆에 다가선 캠프 측근들의 말만 듣지 마시라”고 덧붙였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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