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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이슈 최악의 위기 맞은 자영업

물가 뛴 게 자영업자 탓? 외식가격 매주 공개하겠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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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부가 23일부터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중심으로 주요 외식 품목의 가격과 등락률을 매주 공표하기로 했다. 외식물가가 12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1월 5.5%)을 기록하면서 물가를 끌어 올리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식당가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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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급등한 물가를 잡는다는 목표 아래 ‘외식가격 공표제’를 시행하기로 하면서 물가 상승의 책임을 자영업자에게 돌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외식가격 상승을 고물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셈인데, 방역정책에 이어 물가정책에서도 자영업자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지적이다.

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3일부터 주요 외식 품목의 가격과 등락률을 매주 공표한다. 물가 당국 관계자는 “소비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정부의 시장 감시 노력을 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표 대상으로 선정한 품목은 총 12개다. 죽·김밥·햄버거·치킨 등 정부가 4대 관리품목으로 지정한 먹거리를 비롯해 떡볶이·피자·커피·자장면·삼겹살·돼지갈비·갈비탕·설렁탕 등이다. 모든 개별 음식점의 가격을 게시하는 것은 아니고, 프랜차이즈 음식점 가운데 가맹점 수를 기준으로 상위 업체의 주요 메뉴 가격을 공개한다. 집계한 정보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업계의 불만은 정부가 이미 품목별 외식가격을 공개하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특정 일부 브랜드까지 콕 찍어 가격 동향을 공개하려 한다는 점이다. 앞서 한국소비자원은 가격정보 서비스 ‘참가격’을 통해 김밥·짜장면·칼국수 등 주요 외식 품목의 지역별 평균 가격을 매달 발표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0일 외식가격 공표제 시행을 발표하면서 “분위기에 편승한 가격 담합 등 불법 인상, 과도한 인상이 없도록 시장 감시 노력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먹거리 가격 상승의 배경에 외식업계와 가맹점주 등 자영업자의 가격 인상이 있다는 정부의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재료값이 오르고 배달료를 비롯한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데 제품 가격을 따라 올리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외식가격을 저격하듯이 공표한다고 그동안 커진 부담이 내려가냐”고 반문했다. 서울에서 음식점을 하는 김모(47)씨는 “손님이 끊길까 봐 가격도 쉽게 못 올리는데, 이제는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며 “정부가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리는 음식점에 책임을 뒤집어씌워 소비자와 등지게 하려는 의도인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식품기업을 잇달아 소집해 ‘가격 안정 협조’를 요구하고 있다. 외식업계 관계자를 불러 모은 자리에서는 먹거리 가격 안정을 책임지는 농림축산식품부뿐만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참석해 압박 수위를 올렸다.

고물가의 원인으로 외식가격 탓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넉 달 연속 3%대로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3.6%의 상승률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품목은 공업제품(1.4%포인트 기여)이었다. 국제유가가 오름세를 지속하던 와중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국내 기름값이 영향을 받았다. 외식 서비스 가격의 기여도는 0.69%포인트였다.

인플레이션이 세계적 현상으로 번지는 가운데 정부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시중에 쏟아부은 돈도 물가를 자극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식가격이 오른 것은 인건비 부담과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의 ‘결과’인데, 이를 공표한다고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왜 가격이 올랐는지 ‘원인’을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 수입 확대나 비축 물량 방출 등의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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