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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 치러지는 20대 대선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과거엔 경험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비주류 인사가 후보가 됐고, 후보를 둘러싼 의혹들이 쏟아지면서 비호감도가 커졌으며, 배우자의 행태까지 짙은 뒷말을 남겼다는 점 등. 간단하게만 추려도 이 정도가 금방 떠오른다. 최근엔 한 가지가 더해졌다. 지지율만 봐서는 도통 결과를 짐작할 수 없다는 거다.
과거 대선 땐 이맘때쯤이면 웬만큼 당락을 가늠할 수 있었다. 대개 대선까지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엔 1, 2위 후보 간 지지율 차이가 벌어졌고, 1위 후보가 결국엔 당선됐다. 그러나 요즘 나온 지지율 조사 대부분은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앞서는 조사가 많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앞서는 조사도 있다. 그렇다 보니 대선일까지 겨우 22일 남았어도 섣불리 결과를 전망할 수 없다.
이번 대선도 '단일화' 이슈
이런 상황에서도 분명한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대선 기대 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훨씬 높게 나온다는 점. 엠브레인퍼블릭·중앙일보 조사(4~5일 1005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정권교체 희망 응답이 53.8%로, 정권유지 희망 응답(36.6%)을 압도했다.
케이스탯리서치·한겨레 조사(3~4일 1000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선 국정운영 심판을 위해 야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응답이 47.7%,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여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응답이 37.5%였다. 정권교체 응답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왔지만 역시 정권유지 의견을 압도했다. 최근 조사 대부분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절반을 넘었다. 여당인 민주당과 이 후보 입장에서는 대선이란 '운동장' 자체가 불리한 셈이다.
또 다른 하나는 윤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간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면 야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다. 리서치앤리서치·동아일보 조사(4~5일 1043명 대상·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에서 윤 후보로 단일화하면 지지율은 윤 후보가 45.9%, 이 후보는 34.4%였고 안 후보로 단일화하면 안 후보가 44.0%, 이 후보는 29.0%로 나왔다.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오차범위를 벗어나 앞선다. 다른 조사에서도 지지율 격차엔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단일화 효과가 크지 않다' '두 후보 지지율의 산술적인 합을 기대하면 안 된다' 등 의견이 있긴 하다. 하지만 단일화를 통해 후보 지지자가 상당수 이동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리서치앤리서치·동아일보 조사에 따르면 윤 후보로 단일화하면 다자대결에서 안 후보 지지자의 44.4%가 윤 후보로 이동했다. 물론 부동층으로 30.5%, 이 후보로 15.2%가 빠져나갔지만 절반 가까이는 윤 후보에게 갔다. 안 후보로 단일화하면 안 후보로 이동한 비율이 62.4%나 됐다. 게다가 이 후보 지지자의 13.6%도 안 후보로 이동했다.
단일화를 할 경우 윤석열 표나 안철수 표 모두 단일후보 쪽으로 꽤 이동하고 야권의 승산이 높아진다. 이와 함께 단일화 과정이 대선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되고, 깔끔한 과정이 동반된다면 '컨벤션 효과'까지 생겨 지지율이 힘을 받을 수 있다.
尹·安 필요성만 공감, 방식 놓고 난항
정권교체 여론과 야권 후보 단일화 가운데 정권교체 여론은 '상수'다. 여당과 여당 후보로서는 현시점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대선일까지 큰 변화가 없다고 봐야 한다.
이와 달리 단일화는 '변수'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그동안 "대통령 당선이 목표"를 외치며 '완주'를 강조해오던 안 후보가 13일 전격적으로 단일화를 제안했다. 정권교체가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렵다면서 "여론조사 국민경선을 통해 단일후보를 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 제안에 대해 국민의힘은 즉각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크다"면서 "(안 후보가)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안 후보의 양보(후보 사퇴)를 대놓고 요구한 것이다. 윤 후보는 이날 "(여론조사에 대해) 고민해 보겠지만 좀 아쉬운 점도 있다"고 말해 수용이 어려움을 시사했다.
안 후보는 이날 대선후보 등록을 했다. 또 최근 2012년 대선 당시 단일화 협상 도중 후보에서 사퇴하며 양보한 것을 거론하면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양보에 선을 그은 것이다.
안 후보는 양보는 없다며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제안했고, 윤 후보는 여론조사는 안 된다며 양보를 요구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 실현이 '난망'일 수밖에 없다.
또 최근 안 후보 지지율이 10%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점차 하락할 것으로 보는 시각까지 있다. 안 후보로서는 양보냐 아니냐(완주) 선택만 남았는데 과연 이번에도 양보를 할지 불투명하다. 또 한 번의 양보가 큰 정치적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호감이 낳은 李·尹 숨은표
정권교체 여론이란 상수와 단일화라는 불투명한 변수를 차치하면, 무엇이 승부를 좌우할까.
요즘 '숨은 표'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드러내놓고 지지 의사를 나타내지 않거나 본심을 숨기기 때문에 여론조사에선 포착이 안 되는 표다. 숨은 표는 비호감 대선이 배경이다. 강력한 지지층이 아닌 다음에야 누구를 지지한다고 대놓고 말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케이스탯리서치·한겨레 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의 비호감도는 58.0%, 윤 후보의 비호감도는 54.7%다. 도덕성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거나 능력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이 배경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각각 부도덕과 무능 이미지가 있다. 여기에 더해 요즘 논란이 한창인 후보의 부인도 비호감의 대상이 됐다. 칸타코리아·조선일보·TV조선 여론조사(4~5일 1006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 따르면 호감도 10점 만점에서 이 후보의 부인 김혜경 씨는 3.32점,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는 3.06점에 그쳤다. 이처럼 비호감도가 높은 상황에서 누구를 지지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유권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선일이 가까워질수록 잠재적 지지자들이 결국 투표에 나서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단일화가 없는 상황에선 이 후보와 윤 후보의 숨은 지지표가 얼마나 나타나는가가 대선 결과를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이다.
李에 거부감보다 정권유지 더 중요?
이 후보의 대선 지지율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에 못 미친다. 문 대통령은 45% 전후인데 이 후보는 30%대 중반에 그친다. 문 대통령 지지층이 이 후보에게 마음을 오롯이 주지 않고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중앙일보 조사의 대선후보 지지율 결과를 보면 문 대통령 지지자의 70.2%만 이 후보를 지지한다. 나머지는 다른 후보나 부동층으로 빠진다. 다른 조사에서도 70%가량만 이 후보에게 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후보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강성 친문(친문재인), 진보 지지층이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이런 흐름이 대선 투표에서도 나타날지다. 민주당 인사들은 결국 막판엔 이들이 이 후보 쪽으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한다. 이 후보의 잠재적 지지표, 즉 숨은 표가 있다고 본다.
이런 시각은 경쟁 정당인 국민의힘에서도 나온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이 후보를 (막판에) 선택할 샤이 진보층이 3~5%는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선 경험이 많은 국민의힘 관계자 역시 "과거 대선 때도 막판에 지지층이 결집하곤 했다. 후보 비호감이 커 고민을 하겠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결국엔 이 후보를 찍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후보는 과거 민주당 계열 후보에 비해 호남 지지율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남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60% 정도 나온다. 그런데 2012년 양자구도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호남에서 90%가량 득표했고, 2017년 대선에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표를 크게 잠식했음에도 문 대통령의 호남 득표율은 60% 정도였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이 후보는 2012년 수준은 아니라도 최소 2017년 수준 이상을 얻는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호남의 숨은 표가 나오는 것이다.
'언급량'도 주목된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지지율에서 뒤지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가 구글 검색량에선 힐러리 클린턴을 앞섰고 실제 당선됐다. 물론 힐러리는 전체 득표에서 앞서고도 독특한 선거인단제도 탓에 낙선했다. 하지만 여론조사가 놓치는 부분을 빅데이터가 포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빅데이터 분석 도구인 썸트렌드를 이용해 트위터·인스타그램·블로그에서 최근 한 달(1월 9일~2월 8일) 동안 대선후보 이름이 언급된 양을 집계하면 이 후보가 23만9000여 건, 윤 후보가 16만9000여 건이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이 후보에 대한 관심 자체가 훨씬 크다. 숨은 표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다.
흩어진 정권교체 표심 尹으로 결집?
윤 후보의 지지율은 40% 전후다. 50%를 훌쩍 넘는 정권교체 표심에 못 미친다. 정권교체 표심은 잠재적 지지층인데 일부가 안 후보로 갔고, 일부는 부동층에 머문다. 넥스트리서치·매일경제·MBN 조사(7~8일 1001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정권교체를 희망한다고 밝힌 응답자 가운데 65.6%만 윤 후보를 지지했 다. 14.4%는 안 후보로, 12.8%는 부동층으로 흩어져 있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난망'인 가운데 안 후보와 부동층으로 간 지지표가 윤 후보의 잠재적 우호세력, 숨은 표일 가능성은 없을까. 넥스트리서치·매일경제·MBN 조사엔 현재 지지하는 후보를 바꿀 의사가 있는지 묻는 질문이 포함됐다. 그러자 안 후보 지지자 가운데 45.0%가 바꿀 수 있다고 답한 반면 윤 후보 지지자 중에선 18.6%만이 바꿀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다른 여론조사에선 안 후보 지지자 가운데 변심 의사가 있다는 응답이 50%를 넘기도 했다. 이는 윤·안 두 후보의 단일화가 없더라도 '사표 방지 심리'가 발동한다면 안 후보 지지자 일부가 윤 후보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윤 후보는 60% 수준, 이 후보는 20%가량 지지율을 보인다. 2012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있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역시 다자대결에서 TK 지역의 지지율이 60% 정도였다. 하지만 대선에서는 80% 이상 득표했다. 대선일이 가까워질수록 TK 지역의 숨은 표가 윤 후보 쪽으로 기울 수 있다.
이제 대선후보 등록이 끝났고 15일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막판 경쟁이다. 지금 분위기라면 단일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제 1, 2위를 다투는 거대 정당의 두 후보가 잠재적 지지표, 즉 숨은 표를 얼마나 더 끌어당기는지가 막판 경쟁의 관건이다. 게다가 지난 10일 문 대통령이 윤 후보의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 발언에 분노를 나타내며 사과를 요구했다. 보수·진보 결집을 자극해 숨은 표가 대거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위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상훈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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