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보조금 유예 압박…인접한 우크라이나 위기에 지정학적 부담
판사징계위 징계권 제한, 정직 판사 복직 규정
"탈퇴 안 돼"…지난해 10월 EU 깃발 들고 시위하는 폴란드인들 |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사법부 독립 침해를 둘러싼 폴란드와 유럽연합(EU)의 해묵은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폴란드의 집권 법과 정의당(PiS)이 사법부 통제 수단인 '판사징계위원회'의 징계 권한을 제한하는 개선안을 제의하면서다.
1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 개선안은 판사징계위원회 자체는 존속하지만 판사 징계는 다루지 않고 다른 직역의 법률전문가에 관련된 사안만 다루도록 하는 내용이다.
판사 징계는 대법원 판사 중 추첨으로 선출된 3명 혹은 7명의 위원이 맡는다.
개정안은 또 판사가 판결로 징계받지 않도록 하고 이미 정직 처분을 받은 판사들을 복직시키는 내용도 포함됐다.
폴란드가 이처럼 EU 측에 사법부 독립 개선안을 제의한 것은 EU가 보조금 지급을 유보하고 거액의 벌금 부과를 예고하는 등 압박을 강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쟁 위기 속에 폴란드가 EU와 갈등을 지속하기에는 지정학적 부담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최근 "폴란드가 국제적인 충격 상황에서 (EU와) 싸울 필요가 없다"면서 판사 징계 제도 개선 방안을 제의했다.
EU 집행위원회 당국자는 폴란드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조처로 긍정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직 EU의 요구를 다 충족했다고 말할 수 없다. 폴란드 의회에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개선안이 입법화되려면 법과 정의당의 연정 상대인 연합폴란드당의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법과 정의당보다 강경한 연합폴란드당이 이 법안을 지지할지는 불투명한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 정부는 2017년 대법원 산하에 판사징계위원회를 설치하고 정권에 도전하는 판사에 대해 정직 등의 징계를 결정했다.
2018년에는 하원이 법관을 인선하는 위원회의 위원을 지명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이렇게 되면 여당이 주도하는 하원이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길을 터주는 셈이어서 EU가 회원국에 요구하는 사법부 독립과 법치주의,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폴란드 법관협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판사 6명이 정직됐고 1천명 이상이 사실상 집권 여당에 의해 선임됐다.
유럽사법재판소(ECJ)가 폴란드 정부의 이 정책이 EU법을 위반했다면서 제동을 걸자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지난해 7월 ECJ 결정과 폴란드 헌법 중 어느 것이 상위법인지를 가린다며 폴란드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폴란드 헌재는 지난해 10월 EU의 조약이나 결정보다 폴란드 헌법이 우선한다고 판단하면서 자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EU 집행위는 "EU법은 헌법을 포함, 개별 회원국의 모든 법보다 상위법"이라며 "ECJ의 모든 결정이 개별 국가의 사법부에 효력을 미친다"고 적시하면서 공식적인 법적 제재 절차에 돌입했다.
ECJ는 폴란드에 대해 사법부 통제를 위한 기구를 폐지하지 않으면 하루에 100만 유로(약 13억5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EU 집행위는 지난달 폴란드 정부가 판사징계 제도를 철폐하지 않으면 7천만 유로(약 95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폴란드 정부는 EU 집행위와 ECJ 측의 이 같은 결정이 주권 침해라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폴란드가 EU 측이 부과한 벌금을 내지 않으면 폴란드에 배정된 EU의 보조금을 벌금액만큼 삭감할 수 있다.
EU 회원국 정상은 지난해 7월 코로나19로 타격을 본 유럽 경제를 살리기 위해 7천500억 유로(약 1천40조원) 규모의 경제회복 기금 마련에 합의했다.
EU는 폴란드의 법치주의 파괴를 이유로 폴란드에 배정된 360억 유로(약 49조 원)의 '코로나 회복 지원금' 지급을 유보했다.
폴란드는 2020년 EU의 순보조금으로 125억 유로(약 17조3천억원)를 받아갔다. 폴란드는 EU 27개 회원국 중 최대 보조금 수혜국이다.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폴란드 '법과 정의당'(PiS) 대표 |
폴란드는 2004년 EU에 가입하면서 EU 조약을 지키겠다고 서약하고 EU의 경제·정치적 통합을 지지한다고 약속했지만 극우 정당이 집권하면서 EU와 대립각을 세웠다.
극우 성향의 법과 정의당은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한 데 이어 2019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레흐 카친스키 전 대통령의 쌍둥이 형 야로슬라프 카친스키가 이끄는 이 정당은 서구식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가치보다는 보수 가톨릭과 전통적 가치에 기반한 사회로 '개혁'한다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정책을 편다.
카친스키 법과 정의당 대표는 자신이 총리에 직접 나서지 않았지만 사실상 내각과 국정운영을 장악하고 있다.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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