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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한국 사회에서 천안함 사건 생존자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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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학자 김승섭 신간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연합뉴스

천안함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장병 46명이 사망하고 58명이 구조됐다. 숨진 장병들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으며 숭고하게 산화한 존재로 기억됐다. 그러나 살아남은 장병들을 향한 시선은 싸늘했다. 이들은 패잔병이라는 부당한 낙인과 싸우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어야 했다.

신간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는 천안함 폭침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가 이들의 상처를 어떻게 외면하고 오히려 덧나게 했는지 들여다보는 책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서 질병의 원인을 연구해온 보건학자 김승섭은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의 사건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천안함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2018년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생존장병 가운데 사건 이후 한 번이라도 PTSD를 경험한 비율은 91.3%에 달했다. 58.3%는 극단적 선택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고, 29.1%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 학계에서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 중 PTSD를 경험한 비율을 30%로 추정한다. 저자는 생존장병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에 대한 편견, 전투에서 지고 돌아온 패잔병이라는 비난에 더욱 고통받았다고 지적한다.

군인의 트라우마가 처음 부각된 1차 세계대전 당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군인은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이들에 대한 시선은 오늘날 한국의 군대문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생존장병 가운데 59.1%가 '생존자라는 이유로 함께 있기 께름칙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95.5%는 군에서 '패잔병'이라는 말을 들었다.

연합뉴스

[난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군은 사고 발생 2주 만에 환자복 차림의 장병들을 모아놓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공개 행사는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패잔병 낙인을 강화했다. 충분히 안정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트라우마 경험을 말하거나 떠올리게 하는 것은 증상을 악화시키는 지름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당시 생존장병들은 천안함에 다시 들어가 전우의 유품을 찾거나, 국군수도병원에서 밤늦게까지 조사를 받아야 했다.

저자는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참사가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본다. "첫째는 트라우마 생존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상대 진영이라 여겨지는 피해자의 고통을 조롱하는 진영 논리의 폭력성과 편향적 사고가 만연했던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한 생존장병은 "보수는 이용하고 진보는 외면했다"고 떠올렸다.

저자는 천안함 사건을 '산업재해 사건'으로 볼 때 피해 당사자들의 삶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동하다가 다친 이들에게 상이연금과 국가유공자 등록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자, 한국 사회가 그들의 노동에 대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다.

난다. 268쪽. 1만5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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