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으로는 '플러스'…호남·충청 결합한 DJP연합이 대표사례
단일화 공방으로 늪에 빠진 경우도…2012년 文-安 단일화에도 패배
직선제로 개헌된 이후 1987년 13대 대선부터 지난 19대 대선까지 7차례 선거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14대 대선(1992년)을 빼고는 후보 단일화 문제가 대선의 주요 변수가 됐다는 점에서다.
후보 단일화는 다자 대결 구도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두 후보가 힘을 합치는 것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항상 '플러스'가 돼야 하지만 반드시 성공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후보단일화 성공 사례는 1997년 15대 대선에서의 이른바 'DJP 연합'이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를 이끌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자유민주연합 김종필(JP) 총재는 97년 11월 3일 대선후보 단일화 합의문에 극적으로 서명했다.
호남과 충청, 진보와 보수가 손을 잡은 DJP 연합에 힘입어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됐고, 김 당시 총재는 국무총리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는 승리합니다 |
2002년 16대 대선도 단일화가 선거 주요 이슈가 됐다.
노무현 후보는 당시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대선후보로 선출됐지만, 대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에 줄곧 약세였다
그러나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의 극적인 단일화로 D-24일 조사에서 단숨에 지지율 43.5%로 첫 역전을 이뤘다. 이후 정 후보가 대선 전날 '노무현 지지 철회'를 선언하면서 단일화는 사실상 깨졌지만, 정 후보의 지지철회가 오히려 진영 결집으로 이어지면서 노무현 당시 후보가 대선에서 극적으로 승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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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2012년 18대 대선의 경우는 야권이 후보 단일화를 했음에도 패배한 사례다.
그러나 한쪽의 포기로 불완전하게 이루어진 단일화는 충분한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양측의 화학적 결합으로 이어지지 않은 '절반의 단일화'는 결국 안 후보 지지자들의 반발로 이어졌고, 18대 대선은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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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이슈가 불발된 사례도 있다. 가령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에 진행된 2017년 19대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세론을 등에 업고 독주하자 다른 후보간에 단일화 문제가 나왔다.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보수진영 단일화, 또는 보수진영 내 국민의힘 홍준표-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를 단일화하는 방안이 정치권에서 나왔으나 구체적으로 진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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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서도 단일화 효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려 있다.
절대적인 대세 후보가 없다는 점에서 야권이 어떤 식으로든 단일화를 할 경우 대선 판세가 바뀔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단일화 자체에 대한 국민의 판단이 바뀌어서 별 효과가 없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여권은 단일화를 둘러싼 공방이 지루하게 진행될 경우 오히려 '단일화 늪'에 빠지면서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짐짓 희망섞인 관측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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