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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화)

이슈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러, 16일 침공' 못 박은 미국, 어떻게 정보 얻고 왜 공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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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수뇌부 등 최고위급만 알 수 있는 내용
외신 "정보 당국, 도·감청, 휴민트 통해 확보"
푸틴 계획 공개해 손발 묶고 '외교 시간' 벌어
우크라 "너무 많은 정보 유포" 공포 조장 호소
한국일보

10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의 합동작전 통제구역에서 훈련 중인 한 현지 병사가 탄약을 운반하고 있다. 도네츠크=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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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언론들이 “러시아가 16일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작전 개시일로 검토하고 있다”고 일제히 밝히면서 전 세계가 전쟁 공포에 휩싸였다. 그간 ‘2월 중순’, ‘베이징올림픽 기간 내’ 등의 시점이 거론되기는 했지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날짜를 명확히 못 박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 최고위급만 알 수 있는 기밀들이 미국 정부를 통해 잇따라 공개되면서 정보 수집 방법과 공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가 또 다른 자작극을 기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공격하는 모습을 꾸며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구실을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다. 앞서 3일에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를 공격하는 가짜 비디오를 만들어 유포하려는 증거를 확보했다는 보도도 나왔었다.

지난 8일 CNN방송은 러시아 정보기관과 군 관계자들이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미 정보당국을 인용해 보도했다. 당시 보도에는 러시아 국방부 고위 관료들이 △대규모 침공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생각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거나 △푸틴 대통령의 작전 명령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정예군을 보유하고 있다는 등의 기밀 내용이 담겨 있었다. ‘16일 침공설’을 포함한 이런 정보들은 러시아 내부에서도 수뇌부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갈등 관계에 있는 국가의 내부 정보를 얻으려는 첩보전은 예로부터 있어왔다. 전쟁 시기와 시작점, 군의 이동, 무기 수준,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의중 등 적의 모든 동향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은 병법의 기본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도 최고위급 정보를 얻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언론을 종합하면, 미 정보당국은 통신 감청과 인적 첩보망(휴민트)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날 ‘16일 침공’설과 관련해 “미 중앙정보국(CIA)이 러시아 중앙사령부로부터 도청(intercepted)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CNN방송도 앞서 “정보당국이 통신 감청을 통해 해당 정보를 확보했다”고 밝혔고, AP통신은 “첩보 상당 부분은 통신 감청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해 얻었다”고 정보 당국자의 말을 인용했다.
한국일보

11일 루마니아 동부 콘스탄타주 미하일 코갈니체아누 공군기지에 미군들이 도열해있다. 콘스탄타=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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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어렵게 얻는 정보를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데 있다. 정보원의 신원이 노출돼 생명에 위협이 가해질 우려는 물론이고, 도·감청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위급 인사들이 입을 닫거나 역정보를 흘리면서 혼선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최근 잇따른 ‘첩보 공개’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의 계획을 실시간으로 공개해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좁히고 섣불리 작전을 실행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다. 또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침공 시 떠안게 될 정치·경제적 비용을 계산할 시간적 여유를 주는 동시에 미국도 ‘외교의 시간’을 벌 수 있는 효과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정보브리핑을 담당했던 베스 새너는 “정보 공개에 크렘린궁과 보안기관은 기겁했을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두 번 생각하게 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이날 크렘린궁은 “16일 공격설은 사실무근이자 서방국가들의 음해”라며 부인했다.

첩보를 꽁꽁 숨기다 역풍을 맞았던 과거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합병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 공작 행위관련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러시아는 언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동원해 각종 심리·선전·비방전에 나섰고, 미국은 러시아의 움직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정보전에 능숙한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미국이 이전과 다른 첩보전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전략은 우크라이나에 부담을 안기고 있다.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전면 침공 가능성과 관련해 너무 많은 정보가 유포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불필요한 정보가 넘쳐나면서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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