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선 국면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나 ‘사드 추가배치’와 같이 논쟁적 이슈를 던지면, 다른 후보들이 반발하거나 대응하는 공약을 뒤따라 내놓는 장면들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10일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고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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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 사례는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발언이다. 윤 후보는 지난 9일 공개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은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몬 것에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지난달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처음 발표한 한 줄 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 [윤석열 페이스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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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이슈에선 한 발 빼는 것이 정치인들의 관성이다. 혹은 같은 말이라도 우회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치적 기술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 윤 후보 측의 전략은 다르다. 반발이 크더라도 이슈를 선점하는 게 오히려 낫다는 쪽이다.
윤 후보 측 선대본부 관계자는 “이슈가 닥쳤을 때 피하고 도망가는 화법은 2030유권자들에겐 통하지 않는 문법”이라 말했다. 윤 후보는 지난달 초 ‘여가부폐지’와 ‘병사 월급 200만원’ 등의 공약을 쏟아낸 뒤 선대위 내홍으로 하락했던 2030 세대의 지지율을 단숨에 회복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 3일 대선후보 TV토론을 앞두고 사드 추가 배치에 대해 3당 후보의 집중 공격을 받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3일 첫 대선후보 토론 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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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의 이슈 선점 전략엔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여연)의 여론조사와 전략 제언의 도움이 컸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본부장은 “여가부 폐지는 (여론조사 등) 여러 자료를 검토해 냉정하게 결정했다”며 “정치인들이 계속 피해왔지만 많은 국민이 공감을 원하는 이야기를 해나갈 것”이라 설명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정치 분석에도 여연의 여론조사가 중요한 참고자료라고 한다.
하지만 윤 후보의 모든 발언이 이처럼 치밀한 계산을 통해 나오는 건 아니다. ‘정치 신인’ 윤석열의 직설적인 화법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예상하기 어려운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윤태곤 더모아 전략분석실장은 “이슈를 던지며 어젠다를 선점하려 할 때 중요한 건 그 메시지가 준비된 것인지 여부”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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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의 ‘적폐청산’ 발언을 놓고도 선대본부 내에선 의견이 분분하다. 정권교체 여론에 호응하기 위한 전략적 언어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호남 출신의 국민의힘 인사는 “호남 지지율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다”며 “정치인 윤석열이 아닌 검사 윤석열의 말이 나온 것 같다”고 답답해하기도 했다. 선대본부 내엔 “단일화를 하든, 안 하든 중도층의 지지율을 끌고 와야 하는데, 그 부분에선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사드 추가배치의 경우도 이재명·안철수·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모두에게 집중 공격을 받아 선대본부 내에서 득실 계산을 두고 이견이 있었다고 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어젠다를 선점해 이슈 파이팅을 하는 건 모두 동의한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이슈인데 파이팅(싸움)만 남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논쟁적 이슈를 던지는 건 양날의 검”이라며 “내 지지율이 결집하는 반작용으로 상대 후보의 지지율도 결집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인기자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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