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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재료값 46% 뛰고 주문은 30% 줄고 죽을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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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포장상자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이영우(76) 대표는 요즘 시름이 깊어졌다. 코로나19 이후 주문은 30% 이상 줄었는데 골판지 재료인 라이너(표면종이)와 골심지 가격은 1년 새 46%나 올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2년 전 받은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부담이 더 커졌다. 직원 10명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지도 못하니 속은 타들어 간다. 이 대표는 “가격을 올리면 거래처가 끊길까 봐 ‘울며 겨자 먹기’로 이익을 헐어가며 팔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원자재지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원자잿값과 금리, 환율이 동시에 오르는 이른바 ‘3고(高)’ 현상이 산업계를 전방위로 덮치고 있다.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향해 치솟자 해운업계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HMM은 2020년 연료비로 5000억원을 썼지만, 지난해엔 유가 상승의 여파로 3분기까지 6814억원을 썼다. 그 시점까지 누적 매출(9조3511억원)의 7% 이상을 연료비로 쓴 셈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특히 하반기부터 해상 운임이 재조정되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운임이 올라가면 해외에 제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에도 연쇄적으로 타격이 미친다.

LG화학·롯데케미칼 등 주요 석유화학업체들도 고민에 빠졌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주재료인 나프타(납사) 가격은 오르고 있지만, 제품 판매 가격은 올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친환경을 위해 공장 가동률을 낮추면서 유화제품 수요가 급감한 여파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은 “중국·아시아 유화제품 수요가 감소한 데다 미국·중국 등이 설비 증설을 앞둬 과잉 생산이 우려된다”며 “상반기까지는 수익 개선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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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유가와 환율 직격탄을 맞은 국내 항공업계는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유류비는 국내 항공사 영업비용 중 25% 안팎을 차지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항공유 가격은 지난 4일 기준 배럴당 111.7달러로 지난해보다 73.7%나 올랐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연간 3000만 배럴의 항공유를 쓰는데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때마다 3000만 달러(약 360억원)가량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가 1달러 상승 때 진에어는 76억원, 티웨이항공은 69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르는 환율도 문제다. 항공기 리스 비용과 항공유를 달러로 결제해서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순외화 부채는 약 49억 달러인데 환율이 10원 오르면 약 490억원의 평가 손실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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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대출금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금리 부담까지 기업들을 짓누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소비자 물가가 1.3%포인트 오르면 기업 대출금리는 0.95%포인트 오르고, 이자비용은 13조5000억원 늘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중소기업은 은행 차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더 타격이 크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지난달 ‘글로벌 인플레이션 장기화 리스크 영향’ 보고서에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중기 중 자본잠식기업 비율이 0.63%포인트 증가한다”며 “고물가·고환율·고금리는 중기에 삼중고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스스로 3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속히 기업의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반기까지 원자재·금리 부담이 지속할 수밖에 없는 만큼 기업 경영환경에 우호적인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환율·고비용 체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기업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이는 당장 어렵다 보니 기업들이 고통스러운 한 해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에너지 수급 계획을 개편하고 공급망 관리를 위해 통상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미·이수정·강기헌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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