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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기고]우크라이나 사태, 터키는 중재자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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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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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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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제 여론전과 러시아의 벼랑 끝 전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운은 좀처럼 가실 기미가 없다.

러시아는 미국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전면 금지한다는 약속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돌아온 미국의 서면답변은 여전히 ’나토는 열려 있다’는 것이었다. 공은 러시아로 넘어간 셈인데, ‘전쟁’ 즉 전면전으로 치달아 러시아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그다지 크지 않다. 미국이 국제무역에서 거래가 전면 불가능하도록 스위프트 시스템에서 완전배제하는 방식으로 경제제재를 하겠다고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이 천연가스나 석유를 무기화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50% 이상인 유럽 경제에 심각한 비상이 걸릴 수는 있겠지만, 천연가스 수출 의존도가 상당한 러시아 경제가 입을 타격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푸틴이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이유는 자국의 정치 상황이다. 헌법까지 뜯어 고쳐가며 재집권을 노리고 있는 푸틴에게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 상황 악화도 지지율 하락을 촉발했다. 이를 만회하고자 푸틴은 서방이라는 숙적을 상기시키고 ‘내부’의 적을 ‘외부’로 돌리면서 애국심을 이용해 자신은 영웅이 되고자 한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후 추락하던 푸틴의 인기가 80%로 치솟았던 영웅 신화를 다시 쓰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 역시 ‘위험한 러시아’와 일촉즉발 전쟁 가능성을 전 세계에 경고하며 국제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주변국에는 군대를 파병하면서도 정작 우크라이나 본국에는 군대를 보내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면서, 미국의 얼굴은 세우되 러시아와 정면충돌은 피하는 교묘한 방식으로 전쟁을 ‘자극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는 아프간 철군으로 구긴 이미지 회복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 양국 모두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자국의 정치 역학 속에서 현실은 ‘전쟁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게 되고 말았다. 유럽도 균열상태다. 영국은 미국 편에 줄을 섰지만, 절대적으로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는 엉거주춤하게 러시아 편을 들고 있다.

강대국의 이권 다툼 속에 국운을 걸어야 하는 당사자 우크라이나만 비운에 처한 안타까운 형국이다. “제발 우리나라를 떠나지 말아 달라.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며 파탄 난 국가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볼리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절규는 그 어느 언론도 크게 다루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터키가 나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순방하고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터키는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에서 S-400을 구매하는 등 제멋대로 행보로, 나토 입장에서는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닌’ 나라로 취급받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오며 실리적 외교를 추진해오던 ‘중간국’ 터키가 우크라이나 편을 들며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에르도안은 챙길 수 있는 실속은 모두 챙겼다. 우선 약소국 편에 선 정의로운 ‘빅 브라더’ 이미지를 부각하며 글로벌 리더로 부상했다. 러시아에 끔찍할 정도로 위협적인 무기인 공격용 드론을 우크라이나에 판매하면서, 한 손에는 경제적 이득을, 다른 한 손에는 러시아 협박용 협상카드까지 거머쥔 것이다. 기자회견에서는 “서방이 문제”라고 일침을 가하며 터키의 독자노선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에도르안은 악화된 국내 여론 만회라는 부수적 이득도 챙기고 있다. 전 세계가 금리를 인상하면서 경제 추스르기에 돌입하던 시기,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며 금리를 인하하고 ‘나홀로’ 경제정책으로 전 세계의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경제는 추락했고, 터키 리라화 가치는 급락했다. 국내 인플레이션은 46%까지 치솟았다. 곳곳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반대하는 시위까지 일어나는 상황을 돌파하는 데 우크라이나 개입은 어쩌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미국과 러시아를 말려줄 누군가 리더가 필요한 시기, ‘중간국’ 터키의 등장이 우크라이나를 감싼 전운을 가시게 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기를 기대해본다. /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유라시아투르크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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