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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의 그늘…민원 해결장 아닌 갈등의 활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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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5년 가까이 국민의 '신문고' 역할을 해온 국민청원은 문재인정부의 자화상이다. 지난해 8월까지 누적 게시글 104만건, 방문자 수는 4억7594만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33만명이 찾고 남긴 글은 725건에 이른다. 미국 백악관 청원 사이트인 '위더피플'을 표방하며 2017년 8월 문을 연 국민청원에는 '정인이법'과 '민식이법',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공군 여중사 사망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과 논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문재인정부 중반기인 2019년부터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젠더 갈등, 코로나19 방역을 둘러싼 논란부터 문재인 대통령 탄핵,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해산 등의 청원이 빗발치며 극심한 정치·사회적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 기준인 20만명의 동의를 받아 현재까지 답변이 완료된 청원은 총 276건이다. 이 중 가장 많은 청원의 대상으로 실명이 언급된 이가 바로 국민의힘 대선후보인 윤 전 총장이다. 2019년 8월 조국 사건 수사 관련 기밀 누설죄로 윤 전 총장을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시작이다. 윤 전 총장과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년 넘게 대립각을 세우며 검찰 대 정권 간 전선이 펼쳐진 것은 물론 국민도 찬반 촛불 집회에 나서며 결국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당시 국민청원에도 조국 임명 찬성(75만7730건 동의)과 조국 임용 반대(30만8553건)가 동시에 올라와 갈라진 민심을 반영했다. 급기야 2020년 12월 윤 전 총장 징계를 두고 윤 전 총장 해임과 징계 철회, 추 장관 재신임 등 관련 청원이 쏟아졌다.

현직 검찰총장과 정권 간 극심한 갈등상이 표출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지만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장기간 침묵을 이어가며 정치적 부담을 피한 채 되레 갈등을 증폭시켰다. 갈등의 발단이었던 조국 전 장관에 대해 문 대통령은 2020년 1월 신년 회견에서 "마음의 빚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지난달 27일 대법원은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씨에게 징역 4년형을 확정하며 검찰수사에 손을 들어줬다.

적폐 청산과 함께 문 대통령의 공약 1호였던 검찰 개혁이 국민 통합은커녕 자기 편만을 챙기는 도구가 되면서 결국 민심을 쪼개는 '갈등유발자'로 남은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정권은 조국 사태에서 보듯 적과 동지의 이분법적 사고로 모든 정치적 사안을 규정했다"며 "갈등 관리는 고사하고 갈등을 유발하고 부추겼던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첨예한 진영 갈등은 2019년 4월 패스트트랙으로 국회가 여야 난타전으로 얼룩졌던 당시 민주당 해산(33만7964건)과 자유한국당 해산(183만1900건) 청원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급기야 2020년 2월에는 문 대통령 탄핵(146만9023건)과 문 대통령 응원(150만4597건) 청원이 팽팽하게 맞섰다. 코로나19 초기 바이러스 근원지로 지목된 중국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에 난색을 표하던 정부에 대한 항의가 발단이 됐다.

실제 문 대통령이 최대 성과로 내세우는 K방역도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해 12월 백신패스 결사 반대 청원이 잇따르며 백신 접종 반대 논란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집단적인 불신으로 번지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국민청원 답변자로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14일 법원의 가처분신청 인용으로 마트, 백화점 등에선 백신패스가 중단되면서 일부 K방역 조치는 결국 사회적 갈등만 부추긴 꼴이 됐다. 2020년 8월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을 둘러싼 의료계와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파업 참여 의료진 징계 청원은 물론, 징계로 전문의 국가고시에 응시하지 않은 의대생들을 구제하려는 정부 방침에 반대하는 청원까지 불거지며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드러냈다. 당시 의사들의 파업 과정에서도 문 대통령은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간호사분들을 위로한다"고 말해 의사-간호사 갈라 치기로 갈등을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나오기도 했다.

대선 정국의 이슈로 떠오른 이대남-이대녀 젠더 갈등도 마찬가지다. 2018년 1월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2019년 10월 여성 의무할당제 도입, 2021년 4월 여성 징병제 젠더 이슈가 청원에 등장하더니 지난해 7월에는 대선 정국과 맞물려 여성가족부 해체와 여성가족부 존치 청원이 동시에 논란이 되며 극심한 젠더 갈등이 드러났다. 가뜩이나 페미니스트 정부를 표방한 문 대통령에 대한 이대남의 반감은 문재인정부의 핵심 어젠다인 '공정'이 조국 사태로 무너지면서 극에 달했다. 2020년 6월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는 청원에서 나타난 것처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는 불을 질렀다. 정권 주요인사들의 잇따른 부동산 '내로남불'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이 더해지며 2021년 4월 지방선거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은 완패했다. 불과 1년 전 총선에서 압승했던 것과 비교하면 문재인정부의 갈등 관리 실패가 배경으로 분석된다. 국민 통합을 내걸었던 정부가 갈등 해소, 갈등 관리에 실패하면서 역대 유례 없는 진영, 세대, 젠더 갈등이 대선을 앞두고 폭발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임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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