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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르포] 미얀마 쿠데타 1년…양곤은 '침묵의 저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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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정 항거 '침묵 파업'에 다수 참여…1일 하루 출근 안하고 생업 접어

출근 시간대에도 도로·시장 한산…총든 군경만 도로 행진

연합뉴스

술레 파고다 앞 도로에 출근 시간에도 차들이 확 줄어든 모습.2022.2.1
[양곤=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 쿠데타 1년을 맞은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1일 곳곳에서 '침묵의 저항'이 진행됐다.

직장에 나가지 말고, 장사도 접고 외출도 하지 않음으로써 군사정권과 쿠데타를 거부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주자는 시민들이 '침묵 파업'에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지난해 12월10일에도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미얀마 전역에서 침묵 파업이 이뤄졌다.

1일 침묵 파업은 쿠데타 1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달랐다.

군부도 이를 인지한 터라 1주일여 전부터 침묵 파업에 참여하면 반테러법을 적용해 처벌하겠다고 겁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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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든 군인들을 태우고 가는 경찰 차량. 2022.2.1
[양곤=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양곤 시내 곳곳에선 총을 든 경찰과 군인을 태운 차량이 행렬을 이뤄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출근 시간대인데도 행인이나 차량이 거의 없어 조용했지만 팽팽한 긴장이 도시를 휘감은 듯했다.

오전 7시께 양곤 북부 북다곤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래시장을 둘러보니 상점 중 절반 정도만 문을 열었다.

이 시장은 평소 이 시간대에 장사를 시작하고 이른 아침 장을 보려는 이들로 꽤 붐빈다. 지난해 12월 10일 침묵 파업 당시에는 사실상 모든 상점이 다 문을 닫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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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곤 최대 재래시장 내 일부 상점이 문을 연 모습. 2022.2.1
[양곤=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아침 장사를 시작한 한 상인에게 조심스럽게 문을 연 이유를 물었다.

이 상인은 "어제 공무원들이 와서 오늘 상점 문을 열고 장사를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서명을 받아 갔다"고 했다.

시장 외곽에는 군인들이 늘어서서 침묵 파업에 동참하지 못하도록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한다.

이 상인은 "할 수 없이 문을 열었지만 장사가 잘 안될 거 같아 물건을 평소의 3분의 1 정도만 받아와 팔고 있다"고 말했다.

군인들이 억지로 문을 열게 하는데 이를 거부하면 화를 당할 수 있어 시장 상인은 문을 열되 시민들은 시장에 가지 말자는 이야기가 전날 현지 SNS를 통해 돌았다고 한 상인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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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레 파고다 앞 도로. 출근 시간이 가까워졌는데도 차들이 거의 안보인 2022.2.1
[양곤=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시장을 떠나 시내 중심부 술레 파고다에 도착한 때는 오전 8시께였다.

평상시 같으면 출근 차량으로 꽉 막히다시피 하는 경로였지만 마치 공휴일처럼 도로가 텅 비어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다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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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장군 공원도 텅텅 비어 있다. 2022.2.1
[양곤=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술레 파고다 앞 마하 반 둘라 공원에는 아예 인기척이 없었다.

시내 중심부 깐 도지 호수에 붙은 아웅산 장군 공원도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공원에서 만난 윈 꼬 나잉(가명·34)씨는 "이 시간쯤에는 두 공원에는 적지 않은 시민이 나오는 데 오늘은 사람이 정말 안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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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 달라구에서 양곤항 사이를 운행하는 페리가 도착하는 선착장 모습. 평소 출근 시간대면 사람들로 꽉 차는 선착장이 이날은 매우 한산한 모습이다. 2022.2.1 [양곤=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공원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페리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이곳도 평소 이른 아침에는 양곤 달라구에서 출근하기 위해 페리를 타고 온 직장인으로 엄청나게 붐비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이날 페리 승객은 평소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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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 북부 북다곤 지역 노점 시장이 텅텅 빈 모습. 2022.2.1
[양곤=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이후 중심부 도로를 지날 때 앞에서 또는 맞은 편에서 가끔 보이던 차들은 오전 10시가 넘으면서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정오가 다 돼서 가본 시내 중심부 양곤 호텔 앞 도로엔 차 한두 대만 볼 수 있었다. 이곳 역시 평소에는 몰려든 차로 교통지옥이 되는 곳이다.

쿠데타가 벌어진 지 꼭 1년이 지난 이 날 양곤 시내에선 격렬하고 물리적인 저항은 없었지만 텅 빈 도로와 시장, 공원은 군부를 향한 시민들의 고요하지만 날카로운 항거를 웅변했다.

양곤 시민들은 모두 힘을 모아 출근하지 않고 장사를 하지 않는 각자의 방법으로 군부의 압제에도 흩어지지 않는 서로에 대한 견고한 연대와 결속을 확인하고 있었다.

침묵 파업에 참여하면 철창행을 각오하라고 군부가 위협했음에도 적지 않은 시민이 이를 무시하고 이날 하루 생업을 접거나 출근하지 않는 '작지만 큰 용기'를 발휘한 것이다.

윈 꼬 나잉 씨는 "쿠데타 이후 1년을 지내오면서 민주 세력이 점점 더 강해졌다고 생각한다"며 "올해에는 뭔가 다른 변화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202134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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