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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디지털 전체주의’ 이끄는 붉은 댓글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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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17회>

조선일보

중국의 인터넷 검열을 풍자한 작품. 핸드폰 화면 속 1989년 톈안먼 대학살에 사용된 탱크를 중국공산당 마크가 찍힌 연필의 지우개로 지우고 있는 모습./ D. Thompson,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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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통화도 몰래 녹음...자유 빼앗긴 파놉티콘의 포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21세기 인류는 드디어 원형 감옥 “파놉티콘”의 죄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견 큰 자유를 누리며 맘껏 활개치고 다니는 듯하지만, 어느새 인류는 사생활의 자유를 박탈당한 디지털 빅브라더의 포로로 전락하고 말았다. 파놉티콘에는 간수가 따로 필요 없다. 창살 안에 갇힌 포로들이 다른 창살 속의 포로들을 감시하고 고발하기 때문이다.

다수 죄수가 다수 죄수를 서로 감시하는 이 기발한 감옥의 설계자는 영국 공리주의 창시자 벤덤(Jeromy Bentham, 1748-1832)이었다. 벤덤은 공리적 필요에 따라 관리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대 효율의 감옥을 설계했을 뿐이었다. 효율성에 도취된 근대인의 오만 때문일까? 세상은 이미 거대한 파놉티콘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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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덤이 설계한 파놉티콘, 18세기 영국의 건축가 레벨리(Willey Reveley, 1760-1799)의 도안. 그림/ wikipedia>


신뢰하는 지인과 나눈 지극히 사적인 대화가 몰래 녹음된다. 얼마 후 그 녹음 파일은 인격살해의 흉기가 되어 적진에 넘어간다. 공영방송은 그 흉기를 송신탑에 장착해 적의 수장을 조준하고, 법원은 그 흉기가 공중파를 타고 발사될 수 있도록 법의 허들을 슬쩍 낮춘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법”은 “국민의 알 권리”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는데, 대중은 열광하며 “공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기에 바쁘다. 과연 이 세상 어느 누가 사적 대화에서 무심코 뱉은 자신의 모든 말에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성경의 말씀대로 “너희들 중에서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

21세기에도 자유주의 프로젝트가 지속되기 위해선 원자화된 개개인이 하나로 뭉쳐서 음흉한 디지털 리바이어던에 맞서 사생활의 신성한 밀실을 지켜야만 한다. 밀실의 대화가 녹음될 때, 개인은 발가벗겨져서 파놉티콘의 독방에 감금당하고 만다. 우리는 모두가 파놉티콘의 포로이다. 공인과 사인의 경계는 사라진다. 모든 공인이 사인이듯, 모든 사인은 공인이 되길 강요당한다. 우리가 스스로 공인이 되기 전까지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바야흐로 디지털 대중 파시즘의 시대가 열리고 있나?

중국 공산당, 디지털 감시로 14억 인구에 강력한 지배력 행사

중국공산당은 디지털 혁명에 힘입어 14억 인구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최첨단의 디지털 장비를 총동원해서 인민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기록한다. 모든 이의 언행이 부지불식간에 어디선가 녹화된다. 어느 누구도 정부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가 없다. 개인의 신상정보가 디지털 리바이어던의 빅 데이터로 집적돼 있기에 연약한 개인은 정부에 맞서 싸울 수가 없다. 누구든 정부에 반기를 드는 순간, 정부는 당안(檔案, 공문서 파일)을 열어서 그 반항인의 비리를 들춰낸다. 인터넷 댓글 하나, 술자리 한담, 내밀한 사생활 등 어디서 어떤 기록이 불쑥 나타나 반항인의 목에 올가미를 씌울지 알 수가 없다. 영악한 개인은 디지털 리바이어던의 위력을 알기에 바싹 몸을 낮춰 익명의 다수 속에 몸을 숨긴다.

디지털 리바이어던이 위협적인 이유는 비단 정부의 감시망 때문은 아니다. 중국의 인터넷은 어느 새 분노청년(憤怒靑年)에 장악되어버렸다. 그들은 뼛속까지 강렬한 징고이즘으로 무장하고 있다. 애당(愛黨), 애국(愛國), 애(愛)사회주의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들은 중국의 인터넷 공간을 휘젓고 다니면서 반당적, 반국가적 의견이 감지되면 즉각적으로 집단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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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충칭의 경기장에서 붉은 색 유니폼을 입고 중국의 국기를 흔드는 애국주의 청년들. 사진/ voachine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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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16년 결성된 “소분홍(小粉紅)”은 해외 웹사이트를 공격해 초토화시키는 만행으로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당시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의 인터넷 커뮤니티 “디바(帝吧)”는 당시 회원수 3200만을 자랑했다. 2016년 1월 26일 디바는 타이완의 언론과 차잉원 총리의 페이스북 계정을 초토화하는 첫 번째 “디바 출정”을 감행했다. 이후 그들은 중국과 관련된 민감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해외 웹사이트로 몰려가 난삽한 게시물과 모욕적인 이모티콘으로 도배를 하는 인터넷 테러를 일삼아 왔다.

2016년 3월 영국 버진 애틀랜틱 항공사 사건, 2016년 4월 타이완 연예인 다이리런(戴立忍) 사건, 7월 남중국해 중재안 사건이 터졌다. 한국과 관련해선 2016년 7월1부터 2017년 2월 사드 배치와 롯데리아 제재 사건이 발생했다. 2017년 1월 일본 APA 호텔 사건, 5월 메릴랜드 대학 중국유학생 사건, 9월 홍콩 중원대학 사건 등이 이어졌다.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때 중국의 쇼트트랙 선수가 규정위반으로 실격하자 격분한 소분홍이 순식간에 네이버를 공격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2019년 한국의 한 대학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가 붙자 중국 유학생이 훼손한 후 소분홍은 사과를 요구했다. 가수 이효리가 예명으로 “마오 어때요?” 했다가 마오쩌둥을 모욕했다며 집단적인 성토대회를 벌였다. (김인희,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 2장 참조)

“소분홍”의 인터넷 상 집단테러는 중국 애국청년들의 자발적 활동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들은 중국공산당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중국의 인터넷은 중국공산당이 고용한 200만의 전문인력과 2천만 명의 외곽 청년조직을 통해서 샅샅이 감시되고, 검열되고, 청소되고, 나아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게시물로 도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홍색 댓글부대의 활약...”인터넷은 여론 전쟁의 전장”

중국공산당은 인터넷을 대내·대외적인 여론전쟁의 전장(戰場)이라 여긴다. 중공 정부는 디지털 혁명의 바람을 타고 인터넷 공간에 반당, 반국가, 반사회주의의 게시물이 퍼져나가는 사태를 절대로 방치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중공 정부는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손상하는 해외 언론의 기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국공산당의 표현을 빌면, 해외 언론매체가 악의적으로 반중국적인 기사들을 마구 생산해서 중국의 “형상(刑象, 이미지) 주권”이 훼손되었다. 한 국가의 고유 이미지는 그 국가가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해외 언론매체가 개입해서 이미지를 변질시킨다는 항변이다.

중국공산당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일찍이 인터넷 공간을 장악하기 위한 치밀한 기초공사를 서둘러 실시했다.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성(省)정부와 지방정부는 인터넷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여론전쟁의 부대를 개설했다. 2013년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중공 정부는 더 본격적으로 인터넷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 중국에는 2백만 명의 “인터넷 평론원”이 정부에 고용되어 있다. 이들은 중국 인터넷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중국공산당의 선전원들이다. “인터넷 평론원”이 되기 위해선 먼저 중국공산당에 입당해서 당원이 되어야 하고, 또 수준 높은 문장력을 갖춰야만 한다. 인터넷 평론원들은 각 지방, 각 단위, 각 대학에서 배치되어 해당 지구의 인터넷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관리한다. 우선적으로 SNS, 블로그, 웹사이트 등 인터넷 공간을 정찰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직접 인터넷 토론방에 들어가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게시물을 써서 올리는 임무를 수행한다.

200만 “평론원 대오(隊伍)” 밑에서 또 2천만 명의 “인터넷 문명지원자”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이들을 “청년망군(靑年網軍, 청년 인터넷 병력)”이라 부른다. 정부 측 자료를 보면, 대략 1만 명의 일반 네티즌 당 120명의 “문명 지원자”가 배치되어 있다. 9~10 명을 한 명이 감시하고 견제하는 꼴이다. 2천만 청년망군의 다수는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의 단원들이다. 총인원수가 2017년 현재 8100만을 넘어선 공산주의청년단(이하 공청단)은 14세에서 28세에 한정된 청년단체로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공청단에서 선발된 “문명지원자”들은 인터넷 공간을 감시하고, 불법 게시물을 고발하고, 불온한 콘텐츠를 싹싹 청소하는 역할을 한다. 표면상 이들의 활동은 여가를 활용하는 애국 행위다. 문제는 이들의 여가선용이 모두 “인터넷 평론원”과의 긴밀한 연계 아래서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정치적 활동라는 점이다. 그들이 써서 올리는 인터넷 댓글들은 모두 상위 평론원의 평가를 거쳐서 점수화되며, 이 점수에 따라 정치적 이력이 된다.

각 지역의 문명지원자들은 다단계의 하향적 군대식 명령 계통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조직돼 있다. 2015년 산둥성 칭다오(靑島) 공청단의 자료에 의하면, 20명으로 구성된 소조(小組)가 최소 단위다. 20개의 소조가 모여 400명의 중대(中隊)가 되고, 20개 중대가 모여 8천 명의 대대(大隊), 다시 20개 대대가 모여 16만 명의 지대(支隊), 20대 지대가 모여 320만 명의 총대가 된다.

단위구성최대 지원자수
총대20개 지대320만명
지대20개 대대16만명
대대20개 중대8000명
중대20개 소조400명
소조20명 지원자20 명


<산둥성 인터넷 문명 지원자 조직 구성, 2015년 칭다오 공청단 자료>

외부에서 얼핏 보기에 “평론원” 200만과 “문명 지원자” 2000만이라는 수치가 믿기지 않지만, 오늘날 중국에서 공산당원은 9500만 명에 달하고, 공청단원은 8000만 명이 넘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중공 정부의 대중 동원력은 그만큼 상상을 절한다. 이들은 장시간 집중적으로 마르크스주의 관수(灌輸)교육법에 따라 애당, 애국, 애족, 애(愛)사회주의로 세뇌된 열심당원들이다. 그렇게 일양적 생각으로 당의 이념에 투신하는 8000만 명의 “문명 지원자”들이야 말로 중국의 디지털 전체주의의 등뼈라 할 수 있다.

이들의 기본 임무는 정부의 시책을 헐뜯고 불만을 토로하는 부면(負面, 그릇되고 부정적인 면)의 콘텐츠를 제거한 후, 정부의 모든 면을 긍정하고 칭송하는 정면(正面, 올바르고 긍정적인)의 콘텐츠로 채우는 작업이다. 쉽게 말해, 그들은 바로 지금 중국에서 맹활약하는 애국주의 홍위병들이라 할 수 있다. 일단 대내적으로 중국 인터넷의 관리가 주된 업무지만, 인터넷의 성격 상 이들은 언제든 중국의 국익을 위해서 외국 웹사이트를 공격하는 단체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Ryan Fedasiuk, “A Different Kind of Army: The Militarization of China’s Internet Trolls, China Brief, 21.7 2021. 참조)

조선일보

<2012년. 일본과 영토분쟁이 벌어졌을 때 거기로 쏟아져 나온 중국의 애국청년들. 사진/wiki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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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홍위병, 민주주의 사회의 자유를 악용해 디지털 테러

“소분홍”과 “문명 지원자”는 어떤 관계일까? 전자는 자발적인 애국주의 인터넷 동우회이고, 후자는 자발적인 친정부 애국조직이다. 양자의 공통점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양자 모두 애당심, 애국주의로 무장한 친정부 외곽조직이다. 둘째, 양자 모두 대부분 대학 이상의 고학력 집단이다. 셋째, 양자 모두 대부분 1990년대 이후에 출생한 청년집단이다. 이 두 조직의 멤버들이 어느 정도 중첩되는지를 밝히는 연구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는데, 두 집단의 멤버가 중복될 가능성은 상당히 농후해 보인다.

어떻든 이 두 조직은 중국공산당이 20대 청년층에서 열렬한 지지자들을 규합해 체제 유지 및 선전의 외곽부대로 능란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공산당의 부름에 기민하게 호응하는 대규모 청년조직이 중국 인터넷에서 날마다 여론전쟁을 벌이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언제든 전 세계 어디로든 몰려가서 홍색 테러를 감행할 수 있다. 그 결과 전 세계의 반중 정서는 최고조에 달하고 있지만, 정보의 개방과 표현의 자유를 신성시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소분홍”의 집단행동에 대해선 속수무책인 듯하다.

디지털 혁명 이후 전 세계에서 자유주의 프로젝트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은밀한 상호감시로 친밀한 신뢰의 공동체는 무너지고, 신성한 사생활의 공간이 침범당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천 만 명을 자랑하는 중국의 애국주의 홍위병이 열린사회의 자유를 악용해 홍색 테러를 가하고 있다. 덕분에 파놉티콘에 갇힌 수인(囚人)은 숨을 곳이 없다. 출로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계속>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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